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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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품은 수요일 “정호승의 ‘12월’” - 박준 시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6-12-21 11:09  | 조회 : 4907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6년 12월 21일(수요일)
□ 출연자 : 박준 시인


시를 품은 수요일 “정호승의 ‘12월’”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수요일에 함께하는 ‘시를 품은 수요일’, 짧은 문장이 가진 힘. 글이 주는 치유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함께 살펴보고 시로 치유하는 시간인데요. 이 시간 들으시면서 청취자 분들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시들 있으면 문자 #0945로 추천해주시면 함께 읽고 나누겠습니다. ‘시를 품은 수요일’ 박준 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준 시인(이하 박준): 네, 안녕하세요.

◇ 김명숙: 오늘 특히 더 반갑습니다. 저희가 청문회 때문에 2주 동안 못 만났잖아요.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 박준: 이제 중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방학을 앞두고 있는 시즌인데요. 이럴 때 수업 잘 안 듣잖아요. 그래서 학교들이 특강들이 많아요. 그래서 중고등학교에 강의 다니는 게 많았는데, 아이들이 저를 보면 ‘시인?’ 하고 물음표가 처지면서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으면서 강연을 다니는 날들이었습니다.

◇ 김명숙: 그렇군요. 그래도 좋은 기운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시에 대해 물음표였다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 있을 거잖아요.

◆ 박준: 느낌표로 바뀌는 아이들도 있고요. 물음표에서 졸음으로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웃음)

◇ 김명숙: 네, 이제 성탄절이 얼마 안 남았어요. 아이든 어른이든 설레는 기분이잖아요. 이번 주말인데요. 박준 시인은 성탄절 계획 있어요? 아니면 성탄절에 얽힌 추억 같은 거요.

◆ 박준: 사실 문청이라고 하잖아요.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글쓰기 지망생, 이들한테는 성탄절이 굉장히 잔인한 시즌이에요. 왜냐면 신춘문예라는 것이 1월 1일에 주요 일간지 신문 1면에 작품이 실리는 영광스러운 문학제도인데요. 그것이 당선자에게는 성탄절 전쯤에, 12월 20일 즈음에 당선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그러면 그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응모자들은 ‘아, 올해 떨어졌구나.’ 그래서 시름과 슬픔으로 주로 성탄절을 맞고요. 저도 20대의 대부분의 성탄절을 신춘문예에 낙방해서 눈물과 술로 보냈던, 그래서 이 시즌이 되면 몸이 움찔움찔 합니다.

◇ 김명숙: 아, 그래요? 그래도 그런 고통의 나날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렇게 시인으로 우뚝 성장하신 거 아닌가요. (웃음) 성탄절 관련한 시들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있어요?

◆ 박준: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김광석 씨도 ‘서울의 크리스마스’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고요. 또 오장환, 김종길, 김남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들인데요. 이 시인들이 ‘성탄제’ 혹은 ‘성탄절’이란 제목들로 많이 썼어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제가 방금 말씀드린 시인들이 1900년대 초반 생들이거든요. 1905년생, 1927년생, 이런 분들인데요. 이분들이 시로 쓰던 성탄절은 저희가 지금 이야기하는 크리스마스하고는 조금 다른 개념이에요.

◇ 김명숙: 약간 종교적인 날인가요?

◆ 박준: 물론 종교적인 의미도 있고요. 사실 이들에게는 가장 모던하고, 가장 유행인 날인 거예요. 크리스마스라는 게 본격적으로 들어온 게 해방 이후일 거잖아요. 그러니까 최근에 그런 말이 뭐가 있을까요.. ‘브런치’ 뭐 그런 말처럼, 그 당시 신조어거나 세련된 말로 시 속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 김명숙: 아, 그렇군요. 성탄절이 특정 종교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종교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 같은 느낌이잖아요. 청취자 분들께서도 열린 마음으로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과 관련된 시를 또 오늘 우리가 박준 시인의 음성으로 들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혹시 준비한 것 있으세요?

◆ 박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종교가 함께하는 성탄절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시, 정호승 시인의 ‘12월’ 이라는 시를 가져와봤습니다.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 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 얻어 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 정호승, 12월


◇ 김명숙: 참 들으면서 화면이 그림 같이 떠오르고,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 박준: 네, 눈에 선하게 풍경이 그려지죠. 조계사 앞에 젊은 스님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하고 팥죽을 나눠주고 있고, 그 광경을 못 보고 지나가던 한 여고생이 안타까워서 팥죽 드시라고 떠다 드리고, 시인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는다고 하는데요. 이건 진짜 얻어먹은 게 아니라 마음으로 얻어먹은 것 같기도 하고요.

◇ 김명숙: 그만큼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런 시의 분위기가 현실에서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이 또 팥죽을 먹는 동짓날이더라고요. 팥죽 먹는 날 이런 시를 또 가져 오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긴 하지만, 우리가 방송에서 특정 종교의 시만 다룰 수는 없으니까요. 불교와 관련된 시도 한 편 추천받고 싶어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건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시인이자 승려였잖아요. 그런 관련된 시가 또 있을까요?

◆ 박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은 시인도 해인사 부주지, 전등사 주지 스님까지 했던 높은 스님이셨고요. 시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불교적 사유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의 화엄사상이라고, 사람의 말로 줄이기 어렵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공으로 돌아간다, 이런 것이 불교의 큰 사상의 흐름인데요. 시도 사실 무엇을 경계 짓지 않고 구분하지 않으려는 시적 상상력이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거든요. 그래서 불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시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 드리고 싶은 시는 김사인 시인의 ‘선운사 풍천장어집’이라는 시입니다. 선운사에 가보면 근처에 복분자도 팔고요. 장어집도 많은데요. 거기서 쓴 시인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김 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 남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두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 선운사 풍천장어집, 김사인


◇ 김명숙: 네, 박준 시인의 낭독에 이어 Winter play의 ‘Just this christmas’까지 듣고 왔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저도 기다려지는데요. 박준 시인도 혹시 계획 있어요?

◆ 박준: 저는 좋은 사람과 술을 마실 계획이 있습니다.

◇ 김명숙: 좋은 계획이네요. 좋은 사람은 누구예요?

◆ 박준: 술친구들이죠. 아내도 물론 함께 하고요.

◇ 김명숙: 좋습니다. 오늘 청취자 여러분의 추천시도 있는데요. 3365님이 문자 주셨어요. 앞서 박준 시인도 소개해 주셨던 시죠. 김남조 시인의 ‘올해의 성탄’ 이 시를 추천해주셨네요.

◆ 박준: 네, 김남조 시인의 올해의 성탄,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돌아보는 시인데요.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더 정직해야지
지치고 어둑한 내 영혼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내밀한 광기
또 오욕
모든 나쁜 순환을 토혈인 양 뱉고
차라리 청신한 바람으로
한 가슴을 채워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지등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는,
유서에 서명을 하는,
다시 그 나머지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 양 끄적이는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약에 만월 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며는
배덕의 정사쯤 쉽사리 저지를
그리도 외롭고 맹목인 열에
까맣게 내 두뇌를 태워 가고 있다

슬픔조차 신선하지가 못해
한결 슬픔을 돋우고
어째도 크리스마스는 마음놓고 크게 우는 날이다
석양의 하늘에 커다랗게 성호를 긋고
구원에서 가장 먼 사람이
주여, 부르며 뿌리째 말라 버린 겨울 갈대밭을
달려가는 날이다

- 올해의 성탄, 김남조


◇ 김명숙: 네, ‘올해의 성탄’ 3365님이 추천해주신 시였습니다. 시를 품은 수요일, 오늘 성탄절 관련한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오늘도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준 시인도 성탄절, 계획하신대로 좋은 시간 보내시고요. 다음 주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박준: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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