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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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품은 수요일 “도종환의 ‘라일락 꽃’ - 박준 시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6-11-16 11:06  | 조회 : 6274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6년 11월 16일(수요일)
□ 출연자 : 박준 시인


시를 품은 수요일 “도종환의 ‘라일락 꽃’”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시를 품은 수요일, 짧은 문장이 가진 힘. 글이 주는 치유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함께 살펴보고 시로 치유하는 시간인데요. 이 시간 들으시면서 청취자 분들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시들 있으면 문자 #0945로 추천해주시면 함께 읽고 나누겠습니다. ‘시를 품은 수요일’ 박준 시인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준 시인(이하 박준): 네, 안녕하세요. 시 쓰는 박준입니다.

◇ 김명숙: 내일이 수능 날인데, 수능 보셨던 거 기억나세요?

◆ 박준: 뭐, 그렇게 오래 전 일은 아니라서 기억이 잘 나는데요. 제가 서울 신당동에 있는 한 학교에서 시험을 봤어요. 신당동에서 시험을 보고, 신당동에 유명한 것이 떡볶이 집이 쭉 늘어서 있잖아요. 그래서 시험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면서 ‘아 맵구나. 인생도 맵겠지?’ 이런 생각을.. 시험을 좀 망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김명숙: 시험을 망치셨는데 이렇게 멋진 시인이 되셨습니다. 어느 기준으로 망친 건지 모르겠지만, 시를 쓰는 게 힘드세요? 수능을 보는 게 힘드세요?

◆ 박준: 물론 수능시험이 큰일이고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청소년기의 마지막 시기에 수능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시 쓰는 것은 평생을 가져가는 업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시를 50년, 60년 쓰신 원로 시인들을 만나 뵈도 시 쓰는 거 어려워, 내가 평생 썼는데도 잘 모르겠다. 평생 몇 권의 시집을 냈지만 다시 내일이면 하얀 백지를 마주하는 막막함을 매번 느끼시잖아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시 쓰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 김명숙: 그래도 시 쓰는 일은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 박준: 네, 즐거운 어려움이죠.

◇ 김명숙: 수능 시험은 좋아서 보는 수험생은 없을 거예요. 무척 힘들죠. 그래서 내일 수능인 학생들을 위해서 격려의 의미에서 위로의 시가 있다면 한 편 낭송 부탁드릴게요.

◆ 박준: 네, 저는 도종환 시인의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라는 시집에 실린 ‘라일락 꽃’이라는 시를 가져왔는데요.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라일락 꽃, 도종환


◇ 김명숙: 네, 잘 들었습니다. 라일락 꽃이라고 하면 예전에 라일락 꽃은 첫사랑을 의미한다. 젊은 날의 추억을 의미한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요. 이 시를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 박준: 물론 수능 시험이라는 제도적인 절차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부분 청소년기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제도적으로 재단되고 그럴 수만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꽃이 젖어도 가능성, 향기라든지 빛깔이라든지, 그것은 비에 젖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끌어낼 수 있는 시라서 가져와봤습니다.

◇ 김명숙: 희망을 주는 시 같아요. 꽃은 비에 젖거나 바람에 흩날려도 존재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워요. 우리 수험생들,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수험생들이니까, 내일 아마 좋은 결과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자신만의 빛깔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 박준: 네.

◇ 김명숙: 그런데 우리 어른들도 요즘에 시국이 시국인지라, 참 힘들잖아요. 수험생 못지않게 힘든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데, 시인으로서 요즘 시기적으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 박준: 일단 너무 마음이 어지러우면, 적당히 어지러울 때는 뭘 쓸 수 있는데 너무 어지러우면 뭘 쓰지 못해요. 그것은 시인으로서, 문인으로서의 어려움이고, 시인 말고 시민으로서의 어려움, 지금 청취하시는 분들하고 같은 입장에서 힘들다, 어지럽다, 어렵다, 이런 마음들이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 김명숙: 그렇군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쭉 보면 어려운 시기가 쭉 있어왔잖아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까지, 우리나라는 유독 역사의 굴곡이 많았어요. 이런 역사의 현장 속에 활동한 시인들이 나름대로 표현을 해내고, 서민들을 달래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역사의 굴곡에서 떠오르는 시, 떠오르는 게 있으세요?

◆ 박준: 말씀하셨듯이 현대사의 굴곡과 아픔마다 시인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왔는데요.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우리가 잘 아는 시인들이죠. 이분들은 시인, 예술가이자 투사였던 분들이고요. 또 1960년대 지나오면서 김수영, 신동엽, 이런 시인들이 생각나고요. 또 군사정권 오면서 고은, 김지하, 김남주, 이런 시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좋은 창작 활동을 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 김명숙: 네, 또 요즘 시기를 지나고 나면 이 시기를 생각해서 시로 표현해내는 시인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 가운데에 대표적인 시인의 시를 하나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박준: 네, 김수영 시인의 시 중에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풀’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김수영 시인은 평소에 ‘시는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현실에 밀착해서 온 몸으로 쓰는 것이다, 이런 시론을 가지신 분인데, 그 시론에 적합한 시, ‘풀’을 가져왔습니다.

◇ 김명숙: 네, 들어보겠습니다.

◆ 박준: 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풀, 김수영

◇ 김명숙: 네, 많은 분들이 문자 주셨네요. 1414님, “예전에 교수님께서 라일락 향이 날릴 때면 중간고사 기간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하고 말씀하신 게 30여 년 전이네요. 지금도 라일락 향기와 함께 그때 추억이 떠오릅니다.” 하셨네요. 또 2224님, “나 떨어지거든 밟고 가지 말아요. 비에 젖어도 쓸어내지 말아요. 머무는 곳 어딘지 몰라도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살아온 사람이 눈물이었으니 나떨어지거든 슬퍼하지 말아요... 이 쓸쓸한 계절에 아프고 시리는 국민의 가슴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하고 보내주셨는데요. 직접 쓰신 시 같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시들, 이 시간에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는 나눌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는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문자로 청취자 분들께서 시를 많이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한 편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4532님, “박준 시인님의 음성으로 시를 듣는 이 시간, 정말 좋습니다. 오래오래 이 시간을 지켜주세요. 제가 가을이 되면 꺼내보는 시가 있어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보냅니다.” 하고 문자 주시면서. 김사인 님의 ‘깊이 묻다’ 라는 시를 추천해주셨어요. 우리 박준 시인께서 이 시를 낭송해주시면서 오늘 코너 마무리 하겠습니다.

◆ 박준: 네, 김사인 시인,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이신데요. 실제로 마난 뵈면 말도 굉장히 느리시고, 생각이 신중하시고, 그래서 지금 추천해주신 시도 사람들 마음속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은 품고 사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억을 묻어두고 사는지, 그것을 잘 노래한 시를 추천해주셨어요. 한 번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 깊이 묻다,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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