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주의 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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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좋다 13회] "정몽구 스타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평한다-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11-04 03:35  | 조회 : 2590 
앵커:
세계를 제패한 자동차 CEO의 뒷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카스타 평전, 청취자들과 자동차업계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힘입어서 개편과 함께 시간이 무려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저는 걱정됩니다. 이 분의 얘기를 두 배로 들어야 돼요. 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 나오셨습니다.

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이하 조용탁):
안녕하십니까?

앵커:
두 배 늘어났어요, 두 배.

조용탁:
일단 감사하고요. 저는 항상 이번 방송만 하고 잘린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그만큼 뒷담화를 세게 한다는 얘긴데, 권용주의 카좋다, 개편 첫 주 주인공, 누굽니까?

조용탁: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이 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명실상부 한국 자동차산업의 1인자, 최근 한전부지 통 큰 배팅으로 더욱 유명해지신 분입니다. 오늘의 카스타 평전 주인공, 바로 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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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스타 평전, 그 주인공은 뚝심 경영,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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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현대차 그룹 대표이사 정몽구 회장의 신년사를 들어봤는데요. 모르는 분이 없죠? 카스타 평전,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조용탁 기자는 평소에 취재를 많이 하시죠?

조용탁:
예, 현대차 출입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는 듣고 있는데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거물이라 루머도 많고 또 굉장히 개성이 강한 분입니다. 이 분 설명하려면 한 시간도 모자랄 텐데, 그래도 일단 잘 해 봐야죠.

앵커:
그럼 카스타 평전 첫 번째 이야기, 들어갑니다.

조용탁:
히스토리 원, 왕자의 난, 그리고 11년 만의 계동 사옥 복귀입니다. 정몽구 회장은 1998년 현대차 대표로 부임합니다.

앵커:
그 전엔 어디 계셨죠?

조용탁:
현대 산업 개발이었나요?

앵커:
그 당시에 고려 산업 개발이었나? 아파트 만들던 회사.

조용탁:
역시... 이 당시 98년 말, 2000년대 현대차 그룹이 좀 내홍이 있었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형제 간 갈등이 있었죠. 결국은 그룹의 대권을 놓고 정몽구 회장은 동생 정몽헌 회장과 갈등이 심화됐고요. 결국 왕자의 난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앵커:
한창 시끄러웠어요. 거의 언론의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한동안, 왜냐면 대한민국에서 그 당시만 해도 두 번째로 제일 큰 기업이 분할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제에 미치는 파급도 있고, 상당히 관심사였죠.

조용탁:
그리고 당시 사건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면이 많았습니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거든요. 예컨대 2000년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이 여든다섯 살이었습니다. 운명의 날, 3월 26일 단 하루에만 양 측이 제시하는 전혀 상반된 내용의 서류에 정 명예회장이 네 번이나 서명했어요.

앵커:
그날 당일에 계속 결정이 번복이 되었던 거군요.

조용탁:
그래서 다음 날 결국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로 현대그룹이 방향이 정해지게 됩니다. 그로써 정몽구 회장은 2000년 계동 사옥을 떠나서 양재 사옥에서 현대차 그룹을 이끌게 된 것이죠.

앵커:
그 때 현대차 그룹이 계열 분리가 된 거에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정공, 지금은 모비스의 전신. 그렇게 해서 자동차 그룹으로 분리가 된 거죠.

조용탁:
그런데 여기서 11년 만에 계동 사옥 복귀 말씀을 드린 건요. 정몽구 회장이 11년 만에 다시 계동으로 돌아왔다는 얘긴데요. 현대 그룹의 적통을 상징하는 현대 건설 인수에 성공을 하면서 다시, 본사라고 해야 될까요?

앵커:
이런 거죠. 잠시 떠났던 본가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조용탁:
그날 굉장히 인상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계동 사옥에 정 회장이 와서요. 가장 먼저 간 곳이 15층 회장 집무실이었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용했던 곳인데요. 이곳은 정 명예회장 타계 후에 비어 있었습니다. 정몽헌 회장도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지금도 집무실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직접 확인하셨어요?

조용탁: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앵커:
정말 주워들은 얘기에는 강해요.

조용탁:
이 정도면 거의 정확하다고... 예. 2000년 당시 이야기를 조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당시 현대차가 연 매출 규모가 18조원 정도, 세계 11위의 자동차 업체였습니다. 그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탑클래스는 아니었죠.

앵커:
그럼요. 그 때만 해도 앞으로 10년 내에 자동차 회사 5개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는데 그 중에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게 현대차가 될 것이다,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요.

조용탁:
그런데 그런 회사가 지금 자산 100조원을 넘어섰고요. 글로벌 탑 5 자동차회사 메이커가 된 것이죠. 부친인 정주영 명예회장도 꿈을 못 이뤘던 일관제철소 사업에도 성공했고요. 거기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현대 건설 인수까지 성공하면서 현대그룹의 주요 사업을 복원하는 데 결국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앵커:
그러니까 이렇게 볼 수 있죠. 1세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께서 건설을 중심으로 한 현대그룹을 만들었다면 2세대인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그룹을 중심으로 다시 현대그룹을 이어간 거에요. 우리가 지금 두 번째로 할 얘기는 자동차 쪽으로 재편된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군요?

조용탁:
히스토리 투, 뚝심 하나로 자동차를 황금줄로 만들다. 멘트 괜찮은데요? 말은 그런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정 회장의 성공이 자동차에서 나왔어요. 어떻게 했냐, 경영 스타일을 알아봅시다. 뚝심 경영, 신뢰 경영, 품질 경영, 이건 좀 점잖은 얘기고요. 불규칙한 인사, 럭비공 스타일, 과감한 정면 돌파 승부, 얼마 전 한전에서 볼 수 있는 통 큰 묻지 마 투자, 이런 이야기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앵커:
제가 불규칙적인 인사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습니다. 이건 소문이기도 한데, 일부러 그렇게 한 거다.

조용탁:
이렇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10년 전에 정몽구 회장이 이런 저런 인사를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욕했어요. 현대차 망할 거라고 하고, 저 사람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른다, 이런 얘기까지 나왔는데, 시간이 5년 지나고 2000년대 중후반으로 가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차 조직 시스템이 바뀌고 자동차 품질이 달라지니까 알고 한 게 아니냐, 이런 얘기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알고 했는지 그냥 했는데 된 건지는 몰라요.

앵커:
역사는 말이죠. 승자의 몫이에요.

조용탁: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렇게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어떻게 반론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10년 전에 정몽구 회장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던 저희 선배들이 지금 다 그 때 내가 잘못했다...

앵커:
권용주의 카좋다는 실명제입니다!

조용탁:
저희 쪽에서 현대차를 정말 오래 출입했고 이 현대그룹을 정말 잘 아는 분이었는데, 그 분이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정말 몰랐다...

앵커:
저도 사실 자동차 취재한 기간을 따지면 정몽구 회장의 경영 시대 이전부터 출입을 했었기 때문에, 쭉 과정은 옆에서 많이 봤죠. 좀 달라요, 스타일이, 확실히.

조용탁:
계열 분리 당시 이야기 좀 더 해 보겠습니다. 2000년 9월 25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출범식, 임직원 통합 조회가 열렸는데요. 분위기가 굉장히 싸했다고 합니다. 모회사에서 떨어져 나왔고,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그렇게 밝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내홍이 있었어요. 갈등이 심화되어서 나왔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정몽구 회장이 하는 말이, 2005년에 세계 5위 품질 확보하고 2010년엔 5대 자동차업계로 거듭나겠다.

앵커:
이거 다 주변에서 말도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조용탁:
말도 안 된다고 그랬어요. 임직원들도 나 그만둬야 되나, 이런 임원들 진짜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들었어요. 그런데 그러고서 정몽구 회장이 뭘 했냐, 현장을 갔어요. 현장을 가서 공장이나 이런 데 쭉 임직원들 데리고 다니다가, 공정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 굉장히 짧게 말했다고 해요. 이거 당장 고쳐. 안 고치면 다 잘랐어요. 그러면 뭡니까? 고쳐야죠. 당장 다 달라붙어서 고치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봐요. 선문답도 하고, 이거 어떻게 됐나? 그랬을 때 답이 안 나온다, 잘립니다.

앵커:
그게 사실 현재 자동차 뿐 만 아니라 그 전에 현대그룹 정신이 돌관 정신이라고 많이들 얘기했잖아요. 달성 했습니까? 10년 뒤에?

조용탁:
답이 나와 있잖아요? 시작하면서 답 이야기하고 가잖아요. 글로벌 5대 메이커가 됐다니, 이렇게 하는데 가장 큰 힘, 품질이라고 합니다. 정몽구 회장도 모토는 품질이 모든 것이다, 품질에 있는 문제는 당장 해결해라, 이렇게 굉장히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결국 이게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했거든요. 그 전에 미국에서 현대차 조잡하다, 고장 잘 난다, 내구성 떨어진다, 많이 까였었는데...

앵커:
대표적인 게 영화가 하나 있어요. 에린 브로코비치에 나오면 영화 주인공이 가난한 삼류 변호사입니다. 미국의 아주 어려운 동네에 사는... 그 당시에 나왔던 그 변호사가 타고 다녔던 차가 현대차 엑셀이었어요. 가난함의 상징.

조용탁:
그랬던 현대차가,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나오는 자료가 있습니다. JD파워라고 미국 소비자 품질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여기서 굉장히 상위권을 하는 거에요. 2006년부터 3위, 그 다음에 1등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광고 좀 해서 받을 수 있는 품질 결과가 아니거든요. 확실히 현대차의 품질은 좋아졌다, 거기에는 정몽구 회장의 럭비공 인사, 공포 정치, 아니면 뚝심 경영, 돌관 정신, 품질은 무조건 좋게 만들어라, 거기서 나온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게 부품 만들어 봐서 그래요.

조용탁:
정몽구 회장이 현대 그룹에 입사할 때요. 아버지 몰래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안 받아 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현대차 임직원 얘기해서 애 좀 봐줘서 해 달라고 해서 A/S센터, 수리하는 부서 과장으로 갔는데요. 진짜 한 일은 정말 자동차 수리였습니다. 부품 수리. 카센터에서 일한 거에요. 거기서 나사 조이고 해 봐서 자동차 품질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알아요.

앵커:
결국 껍데기를 뜯어보면 속에 부품이 좋아야 된다는 걸 알았던 거죠. 경영 조원 평가도 있네요?

조용탁:
그 분의 한 분 이야기를 실명으로 해 보겠습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의 멘트입니다.

앵커:
제가 한 번 읽어 볼까요? “현대차 임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 회장이 정을 기반으로 임직원들과 감정적인 유대감을 강하게 맺은 덕분입니다.”

조용탁:
들으면서 저도 마음이 울컥합니다. 저는 이거 보다는 그냥 실질적으로 정몽구 회장 손이 크세요. 진짜 손이 커요. 럭비 선수, 그래서 아끼는 참모라든지 임직원이 상을 타거나 경조사가 있으면요. 직접 가세요. 직접 가서 0이 평균보다 하나 정도 더 붙은 봉투를 주신다고 그러더라고요. 위에서 아무리 감싸주고 그래도 월급쟁이들은 좀 하는 게 저 사람이 날 정말 아끼는구나, 그렇거든요. 인센티브.

앵커:
그런데 달변하고는 거리가 멀다?

조용탁:
멀죠. 주위에서 알아들으시는 분들이 적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긍정적인 얘기를 하신 분이 있어요. 현대차 사외이사를 하신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요.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은 방향성이 확실하다. 그래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변론을 했습니다.

앵커:
짧고 명확하다는 얘기네요. 당장 고쳐.

조용탁:
예. 그냥 고쳐. 당장 안 고치면 안 돼. 이거에요. 그런데 좀 어눌할 순 있지만 명확하다.

앵커:
다 이해할 수 있잖아요? 하지 마. 고쳐. 해.

조용탁:
그리고 집에 가.

앵커:
재밌네요. 역시 조용탁 기자는 뭔가 인물에 대한 평전을 풀어낼 때 매력이 있어요. 세 번째, 뭔가요?

조용탁:
히스토리 삼, 10조의 배팅, 승부수인가, 무리수인가?

앵커:
이게 함수에요.

조용탁:
무리수까지 나왔죠? 사실 최근 10월 24일 현대제철이 동부 특수강 인수에 성공을 했습니다. 우선협상 대상자로 되었는데요. 세아제강이랑 붙었는데 세아제강 쪽 반응이 우린 그 만큼 못 지른다, 담담이 물러나자, 했고 현대제철이 과감하게 이번에도 통 큰 배팅을 했다, 이런 얘기가 돌았거든요? 한 천억 정도 더 적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얼마 전의 일화에 비하면 이 천억이 그렇게 큰돈처럼 들리지가 않죠. 한전 삼성동 부지 10조 5천억 원! 참 말이 많았습니다. 일단 부정적인 말이 많았죠. 승자의 저주라는 이야기까지 나왔고요. 특히 비교가 됐습니다. 삼성 쪽에서는 한 4조원 대를 불렀다는 얘기가 나왔거든요? 2배를 비싸게 샀다, 그리고 부지 감정가가 3조 3천억 대인데 이건 너무 무리한 투자 아니냐,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요. 이 자금을 기술 개발에 사용했으면 현대차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앵커:
지금도 나오는 얘기가 뭐냐면, 예전부터 나오는 얘기가 현대차가 에스턴 마틴을 인수해라, 고급차 만드니까.

조용탁:
인수하고도 돈이 남는다는 얘기가 있었죠.

앵커:
차라리 그 돈이면 에스턴 마틴 인수해라, 이게 낫다,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서 조금은 다를 것 같아요.

조용탁:
이날 현대차 홍보팀이 참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임직원들이 다. 우리가 정말 잘 해서, 우리한테 필요해서 이렇게 한 거다, 우리는 우리가 올해 살 집 만드는 건데 무슨 저주냐, 우리 여기서 집 짓고 계속 살 건데, 팔 것도 아니고 우린 이 땅 계속 쓴다, 봐라, 서울의 중심 강남, 강남에서 가장 알짜 핵심 삼성동이다, 우리가 왜 욕을 먹어야 되냐, 우리 자금을 우리한테 가장 필요해서 이렇게 썼는데,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현대자동차에겐 삼성동 땅이 정말로 필요했어요. 꼭 있어야 됐습니다.

앵커:
왜요?

조용탁:
정몽구 회장, 나아가서 차세대 정의선 부회장으로 연결되는 그룹의 미래를 봤을 때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 뒷얘기가 하나 있는데요. 원래 이 전에 뚝섬에 100층짜리 건물을 올리려고 했습니다. 다 됐어요. 그랬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 정책이 바뀌면서 무산되었거든요? 이 과정에서 성사시키지 못한 수많은 임직원이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왔어요, 삼성동에. 담당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회장님의 말씀은 명확해요. 해.

앵커:
저라면 말이죠. 담당을 안 합니다. 하하하.

조용탁:
하하하, 사내 정치가 안 돼요, 그렇게.

앵커:
세 번째 얘기까지 다 들어 봤는데,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해요. 2000년에 계열 분리를 하면서 10년 뒤에 글로벌 탑 5 가겠다, 성공했죠. 그러면 지금 2014년인데, 앞으로 2024년에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조용탁:
굉장히 힘든 일인데 현대자동차가 지금가지 해 온 것처럼만 하면 할 수 있다.

앵커:
재밌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어요, 정말. 다음 시간에도 여전히 즐거운 입담으로 우리 카좋다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코노미스트 조용탁 기자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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