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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한글 창제, 백성의 의견을 글로 읽겠다는 뜻"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5-10-07 14:15  | 조회 : 4125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5년 10월 7일(수요일)
□ 출연자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국경일, 법정공휴일... 끼었다 빠졌다 사연많은 한글날
- 한글, 인류의 탁월한 지적 소산
- 세종, 조정 신하들의 심한 사투리에 표준 만들고자 하는 의도 있었을 수도
- 온전한 글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글, '반글', '암클'이라는 이름도...
- 한자병기? 역사학자로서 모든 아이들이 한자 배워야 한다는 데에 동의 어렵다
- 세종대로에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보며 정치인들이 정치의 출발점 깨달았으면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여러분, 광화문 광장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떠올리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하지만 그 곳의 원래 주인은 지난 2010년에 다시 돌아온 세종대왕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빨간 날입니다. 하지만 그냥 빨간 날이 아니죠. 바로 '한글날' 입니다. 오늘 히스토리 인 뉴스 시간에는 한글의 역사, 그리고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 스튜디오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저는 10월 9일이 노는 날인지, 아닌지 생각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예전에는 안 놀다가 다시 놀게 되었잖아요?

◆ 전우용: 놀다가, 안 놀다가, 다시 놀게 되었죠.


◇ 신율: 네, 논 다기 보다는 쉬는 날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다시 한글날이 이렇게 된 이유는 뭡니까?

◆ 전우용: 본래 법정공휴일이고 국경일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한글이 갖는 민족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광복 직후부터 있었어요. 그러다가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2005년에 가서야 지정되었고요. 그런데 법정 공휴일이긴 했지만, 재계에서 10월에 노는 날이 너무 많으니까 생산에 차질이 있다고 해서 공휴일에서 뺐죠. 그래서 국경일인데 휴일이 아닌 상태로 몇 년 가다가 2013년에 가서야 다시 법정공휴일겸 국경일로 지정된 거죠.

◇ 신율: 이게 왔다 갔다 하니까 저는 안노는 날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알아봤더니 쉬는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고유의 말을 가지는 경우는 많지만, 글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아주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하죠. 더군다나 인위적으로 만든 글 아닙니까?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것 같아요.

◆ 전우용: 세계사적으로 거의 8천만 명이 쓰는 문자로서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 어떤 의도,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이것이 정확히 밝혀진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고 할 만큼 인류의 대단히 탁월한 지적소산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자이죠.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문자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신율: 그렇죠. 그런데 제가 다른 건 잘 못했는데 국어는 아주 관심도 많고, 고등학교 때 잘 했거든요. 그런데 훈민정음을 보면 ‘중국말과 다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려고 해도 쉽지 않아서 만들었다’ 이게 이유의 전부였을까요?

◆ 전우용: 일단 세종이 훈민정음에서 밝힌 이유는, 이름 자체가 그렇죠.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라는 뜻이고요. 백성들이 글로써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글을 만들어준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고, 공식적인 이유였겠지만, 짐작컨대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세종은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당시 개창한 지 불과 30년 밖에 안 된 신생왕조였고요. 그 나라의 벼슬을 하러 온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인데,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지방 사투리가 굉장히 심했고요. 제주도 방언 같은 경우는 아예 알아들을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상상을 해보면 조금 코믹한 장면인데요. 어전 회의를 했다고 치고, 경상도에서 온 관리가 뭐라고 이야기하고, 함경도에서 온 관리가 뭐라고 응대하고, 이러면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랏말씀이 중국하고만 달랐던 게 아니라 국중(國中)에도 달라서, 뭔가 표준을 정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 편으로는 합니다. 이건 짐작이고요. 실제로는 백성들을 위한 문자라고 봐야죠.

◇ 신율: 박사님 말씀에 동의하는 게, 예전에 신라, 고구려, 백제로 나뉘어 있을 때, 세 나라 사람들끼리 말을 통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잖아요?

◆ 전우용: 그런데 기록을 보면 통역을 데리고 갔다거나, 이런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또 간첩을 잡아서 서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했기 때문에, 말이 쉽게 통하지는 않았겠죠. 굉장히 많이 달랐을 거라고 짐작됩니다만, 어느 정도 예를 들어서 네덜란드어와 독일어 정도의 차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신율: 맞습니다. 그런데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글로써 취급을 받지 못했다, 사실입니까?

◆ 전우용: 근본적으로 이건 28자 밖에 안 되는 것이고요. 본래 문자라고 하는 것이 옛 사람들의 생각에 그랬어요. 소리는 형상일 뿐이고 문자가 가져야 하는 건 뜻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건 글자가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만 표현하는 것이니까, 글자로서의 온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당시 한자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생각했고요. 사실은 이런 생각이 한글창제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1950년대에도 한글은 정말 못쓸 문자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꽤 있었어요. 문자로써 온전치 못한 글자라고 해서 급이 떨어지는 문자 취급을 굉장히 오랫동안 했죠. 아시다시피 여성들이나 배우는 글이라고 해서 ‘암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나 익히는 글이라고 해서 ‘반글’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 신율: 그런데 허균의 홍길동전도 한글로 쓰였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글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군요?

◆ 전우용: 주로 규방에서 여성들이 문학작품을 쓸 때나 음식 비법을 적어서 줄 때, 시집가는 딸에게 내혼을 적어주거나 편지를 쓸 때, 이럴 때 많이 썼고요. 그리고 지방에서 고급 한문에 익숙하지 못한 아전들이 행정문서를 쓸 때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쓰거나, 이런 정도로 주로 사용했습니다.

◇ 신율: 보통 18세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도 유식한척 하려면 라틴어를 썼으니까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럼 우리 글로 인정받기 시작한건 50년대 이후인가요?

◆ 전우용: 그렇지는 않고요. 그 이전까지도 우리 역사가 굴곡이 많아서, 사실 음력, 양력 병용 문제도 따져봐야 할 주제인데요. 문자에 대해서도 한자와 한글에 대해서 각각의 지위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국과의 사대관계가 존재하는 한에서는 논란거리가 안 되었어요. 그러다가 1894년에 청일 전쟁이 일어나고,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대내외적으로 공식 청산하고,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문자가 어떤 것이 국문이고 어떤 것이 비국문이냐? 이걸 고민하게 될 때가 된 거죠. 그래서 갑오개혁 이후에는 한국을 국문이라고 표현하는 사례가 늘고요. 특히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애국심, 민족의식, 이런 것들이 강화되는 차원에서 정부기관에 한글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문연구소라는 게 생겼는데요. 이게 국문이라고 표현한 건 처음 인 것 같은데요. 그 이전에도 독립신문에서 1890년대에 한글만 가지고 신문을 냈기 때문에, 갑오개혁 이후에는 한국이 비로소 국문의 지위를 찾았다, 여전히 중심적인 문자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율: 그런데 전 박사님도 학교 다니실 때 한문 배우셨잖아요?

◆ 전우용: 네.

◇ 신율: 저도 배웠는데요. 한문 안 배운 세대가 있죠.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 전우용: 이 문제는 정말 뿌리가 깊은 문제거든요. 해방직후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전용원칙을 굉장히 고집했어요. 이분은 미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오래 사셨기 때문에, 한자가 없어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분이죠. 그래서 심지어는 한글을 풀어쓰기, 초성, 중성, 종성을 나눠 쓰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해서 알파벳처럼 풀어쓰기까지 지시했었죠. 그런데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말 단어의 7~80% 이상이 한자어에서 유래 한 것이기 때문에 한글 전용화를 하면 뜻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한자교육으로 해결될 거냐고 하면,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예컨대 지금 영어도 그렇고, 외국어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글자와 단어와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라틴어라고 하는 것이 유럽에서 유럽 중세 이전의 모든 문화와 지식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것이고, 유럽 언어들이 대체로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일반인들이 라틴어를 배울 필요는 없거든요. 그런 것이죠. 전문가들이 배워서 풀어서 전달할 영역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요. 요즘 농담 삼아서 아이들이 일취월장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일치얼짱’이라고 쓴다는 말도 있는데요.

◇ 신율: (웃음) 일치얼짱, 이가 고르고 얼굴이 아주 예쁘다는 말인가보죠?

◆ 전우용: 네, 그러면 좀 어떻습니까? 그런 걸 한다고 해서 좀 우스꽝스러운 일은 되겠지만, 그게 일상 대화나 의사소통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필요해서 깊이 있게 연구할 때 따로 배우면 되는 것이지, 모든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다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신율: 그런데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배, 이게 신체 부위인 배도 있고, 물 위에 떠다니는 배도 있고, 2배, 3배 할 때의 배도 있고요. 또 눈이라고 하면 우리 눈도 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있고, 이렇기 때문에 한문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 전우용: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문으로 표기가 안 되는 글자거든요. 눈 옆에 눈 목 자(目)를 쓰겠습니까? 눈 안 자(眼)를 쓰겠습니까? 배 글자 옆에 배 주 자(舟)를 쓰겠습니까? 배 선 자(船)를 쓰겠습니까? 한자 같은 경우에 하나의 대상에도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따라서 여러 개의 다른 문자가 있거든요. 그걸 한자 병기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오히려 한글 발음 자체가, 예전에는 발음으로 해석이 되었던 것인데요. 눈이 악센트라든가, 장단이라든가, 이런 걸 가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지, 사물을 보는 눈인지 구분하는 것이었는데요. 한국어에서 그걸 구분하는 발음 차이가 사라져버렸죠. 그러니까 이건 한자를 병기하든 영어를 병기하든 해결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한글 단어의 특징이기 때문에, 이런 단편적인 이유를 가지고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일반의 견해, 예컨대 한자교육과 관련한 이익단체의 개입에 대해서 의심하는 견해가 있는데요.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왜 몇 십 년 동안 문제없이 살아왔는데 이러는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 신율: 네, 그런데 말이에요. 어쨌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실로 펴지 못하는 것이 한이기 때문에 만들었어요. 오늘날 이 부분이 정치인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겠죠?

◆ 전우용: 일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건 아니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한글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은 1913년의 주시경 선생이 붙인 거죠. 그러니까 한글이라는 이름을 쓴 것도 100년 조금 넘은 겁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근본 목적이 백성의 의견을 글로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백성이죠. 어리석은 백성의 말도 들어서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거죠. 하나는 백성을 교화하겠다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백성이 글로 써서 올린 것을 보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어리석은 백성, 가장 낮은 백성, 가장 가난한 백성의 말을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 만든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중심대로의 이름이 세종대로죠. 경복궁 바로 앞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정치인들이 정말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가장 낮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 가장 어리석다고 치부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 이걸 듣는 것이 정치의 출발이다, 이걸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 신율: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가 아니라 ‘어린 정치인들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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