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 진행 : 신율 / PD: 신동진 / 작가: 강정연,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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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욕망의 정착지 강남.. 송파 싱크홀로 이어지는 서울 도시 개발사-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11-21 20:07  | 조회 : 4487 
세상을 바꾸는 정면승부.
한국인 욕망의 정착지 강남.. 송파 싱크홀로 이어지는 서울 도시 개발사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

[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4/11/21 (금) 오후 6시
■ 진 행 : 강지원 변호사

앵커 강지원 변호사(이하 강지원):
세상을 바꾸는 정면승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앞서 2부에서 잠실의 상황을 알아보았었는데요. 지금은 고층빌딩, 대단지 아파트로 아주 화려한 모습이죠. 이 잠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의 전우용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십니까?

강지원:
정말 잠실이라고 하면 개발 이전하고 이후하고 하늘과 땅이에요.

전우용:
네, 많이 달라졌죠.

강지원:
전에는 백사장이 쫙 깔려 있던 데 아닙니까?

전우용:
섬이었죠. 잠실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선시대 왕비가 누에치기하는 의식을 치르던 곳이라서 누에 실, 잠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거고요. 강북 쪽에 가까운 하중도라서 부리도라고 불렸던 곳이죠.

강지원:
잠실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뭐였습니까?

전우용:
얘기가 좀 긴데요. 강남 개발의 연장 사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강남 개발 계획은 5.16 직후에 구악일소라고 해서 부정축재범 일소하는 그런 일련의 조치가 있었죠. 그 때 부정축재자로 잡혀 들어갔던 사람 중에서 유명한 친일자본가 박흥식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신 백화점 주인이고요. 그 당시에 부정축재자들이 일단 잡아는 들어갔는데 다 각서 한 장 쓰고 나왔어요. 국가 재건에 헌신하겠다고 나왔는데 국가 재건책 중에 하나로 건의했던 것이 강남 개발이었어요. 그래서 강남 개발 그림을 그려서 제출을 했었는데, 그게 60년대 초반에는 잘 안 됐어요. 특히 민정수립 이후에 62년 이후에 서울시장을 맡았던 분이 윤치영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잘 아시죠? 청취자 여러분들 잘 아실 거에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삼촌이기도 하고, 윤치호와는 사촌 관계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분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독특했어요. 당시 국회에서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도시계획 제대로 안 하고 뭐 하냐, 라고 질책을 하니까 내가 도시계획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문제는 시골 사람들이 자꾸 서울에 들어오는 게 문제인데 도시계획 해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되면 시골 사람 더 밀려들어 온다, 그래서 도시계획 안 하겠다, 하는 그런 멘탈이었어요. 그래서 6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손을 안 댔다가 66년도 4월에 유명한 불도저 시장 김현옥씨가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서울 개발이 진행이 되었는데, 그 때 제일 먼저 손을 댔던 것이 여의도 밤섬을 헐어서 여의도에 갖다 붙이고 여의도 윤중대를 쌓고 거기에 새로운 시설을 갖다 놓는 공사를 했었고요. 그 공사 하고 나서 뒤이어서는 영등포의 동쪽 지대, 그래서 영동지구라는 이름이 붙었던 거거든요? 거기 하는 작업을 했었고요. 그 다음에 들어간 게 다시 그 동쪽 지역인 잠실, 이 사업은 2가지로 나뉘어져 있어요. 하나는 한강 제반 공사를 하면서 양 쪽 강변에 큰 제방을 쌓고 그 위를 도로로 활용하고 제방 안쪽을 택지로 개발해서 불하하는 사업이 66년부터 70년경까지 진행이 됐고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공유수면매립사업이라고 해서 강의 저지대를 메꿔서 택지로 바꾸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죠. 거의 공짜로 택지를 얻는 그런 사업이었기 때문에 시가 직영한 것도 있고 민간업체한테 특혜를 줘서 한 것도 있는데, 이런 와중에 강변에 있던 저자도라든가 부리도라든가 강에 있던 저지대 하중도 같은 경우들이 많이 헐려서 강에 가까운 지역에 택지를 개발하는 용도로 쓰였죠. 잠실지구 개발된 것은 그렇게 이른바 서울의 택지를 많이 확보하고 마침 불기 시작했던 아파트 건립열에 편승해서 한 편으로는 시의 건설자금도 마련하고 또 다른 형태의 자금들도 마련하고, 이런 용도로 만들어져서 그렇게 택지로 개발되었던 거고요. 또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라고 한다면 1970년도 아시안게임을 우리가 유치를 했었어요. 도저히 경제 사정이 안 되어서 반납을 했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굉장히 치욕적인 일이어서 다음 번에는 아시안게임을 우리가 반드시 유치하겠다, 70년 반납한 직후에, 그러면서 아시안게임을 위한 스포츠센터 건설 부지로 잠실 일대를 그 당시에 이미 지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잠실 일대에 개발이 본격화했던 거죠.

강지원:
하여튼 강남개발이라는 게 서울 근대화의 상징처럼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전우용:
서울 근대화 뿐 만 아니라 사실은 현재로 보자면 한국인 욕망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겠죠. 대다수 사람들이 강남에 살고 싶어 하고요. 강남 주민이 되고 싶어 하고, 강남 3구라고 불리는 지역 있지 않습니까? 지역 주민들은 남다른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고...

강지원:
옛날엔 무지 쌌는데.

전우용:
그렇죠. 예전엔 뭐... 제가 60년대 서울시 도시개발 행정을 담당했던 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60년대 중엽인데 혜화동, 지금 대학로에 있는데, 작은 여관을 가진 분이 있었는데 3평 정도가 도로선에 편입되게 되었더래요. 주인이 찾아와서,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이 3평을 도시계획선에서 빼 주면 잠실 땅 3천평을 주겠다, 그렇게 제안을 했더래요. 이분은 당연히 그러셨겠죠. 안 들어줬다, 만약에 내가 그 때 들어줬으면 지금 부자 됐을 텐데, 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강지원:
그럴 정도였네요. 그런데 하여튼 강남, 하면 우선 아파트 문화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주거문화의 획기적인 변화죠. 지금도 아파트가 이렇게 밀집한 문화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냐, 안 하냐, 그런 논란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우리 현실에 주어진 과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요. 지금 아파트 말고는 완전히, 한국적인 새로운 주거 문화가 됐죠.

전우용:
가장 표준적인 주거 모델이 되었죠. 그런데 1984년일 겁니다. 가수 윤수일이 아파트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이게 아마 굉장히 대중적인 노래였죠. 노래방에서 끝날 때 거의 부르는 노래처럼 됐었는데, 이 노래 가사가 무척 재미있어요. 시작하는 아파트의 위치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다리 건너 갈대 숲 지나 있다고 하는 얘기는 그 자리가 강남이다, 라는 얘기잖아요? 강남 또는 송파라는 이야기인데 그 아파트 가사에 보면 이 아파트가 누가 사는 집이냐면, 옛날 노래들은 그랬잖아요? 달타령 같은 걸 보면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랬고 그 보다 10년 전 쯤에 나온 남진의 님과함께를 보면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그런데 이 윤수일의 아파트에는 누가 산다는 얘기가 업성요. 아무도 없는 아파트죠. 돈만 넣었다 빼는 아파트라고 하는 생각, 주거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만 인지되는 그런 아주 독특한 주거인데, 그러니까 아파트라고 하는 것이 주거 형태로 한국인의 표준일 뿐 만 아니라 집에 대한 생각에서 한국인의 표준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정말 웃기는 장면이죠. 어떻게 생각하면... 가끔 가다 요즘도 어떤 아파트 단지 입구에 가면 현수막 크게 걸어 놓고 경축, 우리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 이렇게 써 붙이잖아요? 그런데 그 안전진단 통과라고 하는 문구가 안전하다는 게 아니고 위험하다는 거잖아요? 자기 집이 무너지게 생겼다는데 경축 현수막 내는 그런 식의 문화는 아마 지구상에 여기 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아파트가 여러 형태로 삶의 형태 뿐 만 아니라 집에 대한 의식까지 바꾼 주거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강지원:
안전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전에 와우아파트 사건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대단했었죠. 그때 아파트가 부실하고 말이죠.

전우용:
그 사건으로 정말 대통령이 신임을 받았고 일 잘한다고 소문났던 김현옥 시장이 바로 옷을 벗어야 했죠. 그런데 그게 옷 벗을 만한 책임을 질 만한 사유들이 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와우아파트 뿐 만 아니라 회현아파트, 낙산아파트, 옥인아파트 같이 아파트를 대개 산비탈에 지었어요. 판자촌을 철거해 놓고는 산비탈에 지었는데 그 때만 해도 우리가 아파트 지어 본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아파트 자체가 별로 없었으니까... 전해오는 얘기로는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이 위험하다, 우리가 아파트 지은 경험도 없는데 이렇게 산비탈에 계속 지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라고 했다가 김현옥 시장한테 굉장히 심하게 혼났다고 그래요. 시장이 그랬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시장이 야, 여기다가 지어야 청와대에서 보일 거 아냐, 하하하. 일종의 전시 행정의 결과였고...

강지원:
전시 행정도 아니고 청와대에 보이기 위한 행정이네요.

전우용: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옷을 벗어야 하는, 물러나야 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사실은 우리가 6~70년대부터 아직도 반성할 부분이 많았지만 90년대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건설 중에서 부실 낙인이 찍히고 부실한 결과 때문에 나중에 참사로 이어진 일들을 여러 차례 겪었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들의 하나의 단면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강지원:
그런 의미로 개발의 역사를 우리가 살펴볼 때 정말 과거의 주거지를 철거하고 이주민들이 다 생기지 않겠습니까? 또 강제이주 시킨 부분도 있었죠.

전우용:
유명한 게 광주 대단지 사건.

강지원:
참 그런 기록할 만한 사례들도 있었어요. 그렇죠?

전우용:
다 기록할 만한 사례죠,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개발은 어떻게 보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한국 현대사의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토건과 관련해서는, 인식들을 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강남 개발, 어마어마한 서울, 과거 조선시대 서울이라고 하는 게 도성 안하고 도성에서부터 성 밖 10리 까지를 한성 관할구역이라고 봤는데요. 그게 지금 대략 강북지역에 해당해요. 그것만한 곳을 다시 도시로 편입시킨 작업이 강남 개발인데 그런 엄청난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도시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얘기하기로 세계 도시사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였거든요. 그런데 마스터플랜도 없었을 뿐 만 아니라 개발의 전체 과정을 기록해 놓은 백서 한 권 안 남아 있습니다. 없습니다. 그래서 강남 개발 역사를 정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점들인 거죠.

강지원:
전우용 교수님께서는 역사 전공이신데, 현대사 전공은 아니시겠죠?

전우용:
근현대사 다 섞어서 하고 있습니다.

강지원:
그러세요? 그러면 강남 역사 쓰셔야 되겠네요.

전우용:
열심히 쓰신 분이 계셨어요. 당시에 강남 개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회고하시고 기록하시고 하는 분이 선정록 선생님이라고 계신데 연세가 많이 드셨죠. 그 분이 많이 정리를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빠진 구석들이 많죠.

강지원:
우리 역사에서 보면 이렇게 새로운 지역을 개발하고 또 그 과정에서 강제 이주도 하고 불평, 불만도 나올 수 있고요. 또 저항도 있었을 거고 하는 그런 사례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거 없습니까?

전우용:
사례들이 있는 정도가 아니고요. 사실은 6.25 전쟁 끝나고 서울에서 벌어진 일상적인 전쟁이었죠. 전투였거든요. 그건 뭐 매번 철거 예정지역 되면 지역 주민들은 철거 결사반대하면서 싸우고, 경찰이 들어가든가 아니면 이른바 용역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강제 철거 하고, 그게 전쟁이죠. 그런 형태의 일상적으로 사회 내의 적대감이랄까요? 또 원한이랄까요? 이런 게 쌓이게 만드는 과정이 계속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 않습니까? 도시 개발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역사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원한 속에서 진행되었던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강지원:
우리 역사에서 좀 반면교사로 삼아서 이런 일은 어떻게 현명하게,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돼요. 유능한 지도자가 나온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전우용: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첫째로는요. 우리가 재개발을 해서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외국 학자들은 참 오히려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해요. 어마어마한 아파트 단지가 있잖아요. 산만 해요. 저거 수명 다 해서 건축 폐기물 다 어떻게 할 거냐, 너희들, 그 건축 폐기물 당연히 처리될 거라고 생각하고 짓고 있는 거잖아요? 몇십년 후에도 그렇고 지금 당장 개포지구라든가 강남에 문제가 되고 있는 대단위 아파트들 같은 경우에 15층, 16층 지었던 거 30층짜리 또 지을 거고요. 그 폐기물 관리, 후손에게 쉽게 말하면 엄청난 짐을 던져 주는 거죠. 그것도 생각을 해야 되겠고요.

강지원:
재개발 하거나 그렇게 하겠죠? 그렇게 하면 폐기물 엄청나게...

전우용:
건축물, 그거 다 쓰레기잖아요. 덩어리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게 하나의 문제일 거고요. 또 하나는 그 동안 행정가들이든 시민들이든 볼 때 지도로 이게 땅값이 오를 것이냐, 안 오를 것이냐, 어디가 입지가 좋으냐만 따졌을 뿐이지 지도를 보면 사람이 안 보여요. 땅만 보이거든요. 사람 없는 개발,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이 되어 왔던 거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 땅이라고 하는 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 붙이고 정 붙이고 사는 터전이다, 항상 거주민을 배려하는 개발, 이런 것들에 대한 사고가 커져야 하는데 사실은 서울 사람들이 말이 서울 사람이지만 해방 무렵에 100만 명 좀 넘었고요. 이게 1000만 되는 데 80년대 중반에 가서야 천만이 되었어요. 쉽게 말하면 10배로 느는 데 40년이 걸렸다는 거고요. 서울 사람들 대다수는 고향이 서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생각이 서울을 사랑하고 아끼고 고향처럼 보는 게 아니고 그냥 여기서 벌다가 돈 좀 벌면 노후에 튀어서 고향이나 교외에 가서 근사한 집 짓고 살겠다는 평범한 꿈을 꾸는데, 이런 꿈이 사실은 이 도시에 대한 애착을 줄이는 것이고 땅에 대한 애정을 줄이는 일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제 인구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저만 해도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 제 아이들은 서울에서 태어났거든요. 자기 고향이니까 다음 세대는 이 땅을 보는 태도나 이런 게 달라지지 않을까,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강지원:
그래서 저는 걱정입니다. 과연 이렇게 비대한 서울, 이렇게 인구가 많은, 천만 명, 인구의 4분의 1 정도, 경기도까지 하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모여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전우용:
아니죠. 그래서 이게 예전부터 서울을 과잉 성장도시라고 세계에서 드문, 이런 얘기를 해 왔었고요. 그래서 균형발전이라는 얘기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고 세종시 만든 것도 그런 의도였던 거죠.

강지원:
저는 그래서 저부터 나가서 살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의 전우용 교수와 함께 한 세상을 바꾸는 정면승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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