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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정계 진출"-정화원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이사장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8-28 10:39  | 조회 : 2905 
YTN라디오(FM 94.5) [수도권 투데이]


"장애인의 정계 진출"-정화원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이사장



앵커:
<만나고 싶었습니다> 시간입니다. 요즘 뉴스나 신문에서 '정치면'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는 분들 많으시죠. 여야 정치인들 모두 서로 헐뜯고 비난하기에 급급한 모양새인데요. 2005년, 지금으로부터 9년 전, 17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요. 동료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의원이 있습니다. 헌정사상 처음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데요. 기립박수를 받았던 주인공이죠.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정화원 회장,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정화원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회장(이하 정화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청취자 여러분들께는 '정화원 의원'으로 더 익숙하실 것 같은데요. 17대 때 국회의원을 지내셨죠?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정화원:
장애인 단체를 좀 도와주고,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을 인수해서 거기에 매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 전의원께서는 지금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회장을 맡고 계신데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이 어떤 조직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정화원:
이름 그대로 우리 장애인들은 공산품이나 사회인식 부분 등등에서 상당히 열악해있죠. 옛날보다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서 이것을 정부 정책도 우리는 소비자 입장이고, 사회 인식도 우리는 소비자 입장이고, 지금 각종 장애인 관련법들이 만들어져있는데 이게 잘 지켜지느냐 안 지켜지느냐도 소비자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고. 더구나 공산품, 말하자면 전자제품, 모든 화장품, 여러제품 중에 장애인들이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점자가 안 찍혀있고 인식이 이해가 잘 안되고. 특히 요즘 많이 쓰는 스마트폰에는 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런 데 아주 성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도 앞으로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하죠.

앵커:
약간 장애인들이 소외받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는 채원에서 만들게 됐다고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리고 외국에서도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과 비슷한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외국 사례도 소개를 해주시죠?

정화원:
외국에는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이뤄지고 있고요.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려면 여러 가지가 많겠지만. 아까도 잠깐 얘기를 했지만 애플에서 아이폰을 만들었잖아요? 만들 당시에 애플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을 불러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걸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여러분들도 아이폰을 쓸 수 있겠느냐고 해서 굉장한 기간을 두고 연구를 해서 당시 스티브 잡스가 그렇게 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나라 스마트폰 쪽에서는 전연 그런 게 없고. 요즘 와서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일어나고 있고. 미국의 ADA법이라고 있는데 이법을 만들 때 굉장히, 장애인들이 나서서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이걸, 이것도 나는 넓은 의미에서 소비자 운동이 아니냐는 생각이듭니다. 그런 차이가 많죠. 앞으로 점점 개선되어 나가리라 생각됩니다.

앵커:
17대 국회당시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신 최초의 시각장애인이셨잖아요? 어떻게 국회에 입성하게 되셨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정화원:
제가 장애인 운동을 아주 길게 많이 했고. 제가 스스로 바깥에서 암만 우리가 외치고 떠들고 해봐도 그게 잘 안 이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국회나 법을 만드는 데 직접 들어가서 우리의 법을 우리에게 맞게끔 만드는 게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 역시 법이 잘 돼있어야 정책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노력을 했죠.

앵커:
국회의원으로 등원하기 전에는 부산에서 시의원을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부산이 장애인 복지 운동의 메카라는 얘기를 언론에서 하셨더라고요?

정화원:
네. 메카라고 얘기하기엔 좀 그런 것 같고. 이게 무슨 얘기냐면 부산에서 제가 지금까지 장애인 운동 40년 정도를 했는데요. 총연합회가 부산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어요. 1987년도에 제일 먼저 만들어지고. 그때 제가 전국 장애인단체 분들을 초청해서 5천여 명의 부산 장애인들을 모아서 제가 장애인총연합회의 필요함,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총연합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산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 그래서 제가 전국에다 얘기를 하면서 당신들도 총연합회를 만들라고 주장을 하고, 광주, 경북, 대전 순으로 만들어졌고요. 그리고 몇 년 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서울에 있는 장애인 지도자들과 의논을 하면서 총연합회를 만들어야한다. 장애인들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는, 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총연맹을 20년 전에 만들었죠. 제가 올라와서 부산 장애인 단체들이 올라와서 이걸 만들었다는 게 그래서 한 번씩 그런 얘길 합니다. 부산이 장애인 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얘기를 하죠.

앵커:
다시 국회 이야기를 해보면, 국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정화원:
솔직히 말해서 들어가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가, 시각장애인이 상당히 낮아요. 어떻게 글을 읽고, 뭘 하려면 글을 읽어야 하고. 요즘 같으면 컴퓨터도 보고 다 해야 하는데 그게 제가 할 수 있느냐? 그것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그런 염려를 하니까, 주변 사람들의 시각이. 내가 정말 잘해야 할 텐데, 하는 당황스러움이 우선 있었고. 좋다. 해보자. 외국에서도 다 되는 일, 외국에는 장관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고 많이 있거든요? 심지어는 대학총장 못하는 것 없이 다 하는데 우리나라라고 왜 못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정말 잘 해야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도 이해도도 올라간다고 생각을 했고. 특히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특히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앵커:
앞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헌정사상 처음으로 기립박수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대정부질문 때였나요?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시죠.

정화원:
사실상 제가 시각장애인이 의정 단상에서서 그야말로 국무위원들과 장관들을 상대로 우리가 필요한 부분, 우리가 문제로 생각하는 부분을 얘기를 하니까, 내가 뭘 잘해서 보다도 이게 의원 분들의 생각은 감동적이다. 지체장애인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지체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은 아무래도 차이가 나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점자를 더듬어가면서 하니까. 저도 의외였는데 기립박수가 나오고. 의원 분들이 굉장히 반가워해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모습. 더더군다나 그걸 마치고 나니까 언론에서 보좌관이 조사를 해봤는데 117개 언론에서 그걸 대서특필하고 다뤘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리고 전화를 1천통도 넘게 받았어요. 의원실에 전화가 3대가 있고 제 핸드폰, 보좌관, 비서관들 핸드폰 해서. 그야말로 정 의원이 얘기한 것이 되든 안 되든 정 의원이 우리의 한을 원을 풀어줬다. 우리의 생각을 거기서 얘기해주고 그게 TV를 통해서 전국에 방영되는 것이 우리는 기쁘다는 얘기가, 하여튼 그랬습니다.

앵커:
정말 듣기만 해도 흐뭇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도 잠깐 이야기 나왔습니다만 헌정 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이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가 뭐라고 보십니까?

정화원:
이건 장애인 사회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면이 아닌가. 장애의 유형이 여러 유형이 있는데 그동안 지체장애인들만 했지 다른 장애인들은 공직이나 공기업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도 최초로 했지만 이런 걸 사실 국민들도 생각을 안 하고 우리도 별 관심을 안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최초로 이게 되니까 그야말로 장애인이 사회에 인식되는 데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됐다. 정치적으로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죠.

앵커:
계속 말씀을 나눠보면 의정 활동을 하다가 누군가 답변자로 나올 때 나온 지, 안 나온 지 알기 잘 힘드시잖아요? 그런 걸 포함해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정화원:
그런 에피소드가 좀 있었죠. 제가 대정부질문 할 때 그 전날 가서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밑에 의원들이 모여 있는 곳과 제 단상과의 거리, 고개의 각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TV가 보고 전국민이 다 보는데 제가 장애인처럼 보여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리고 국무위원들은 어디에 서느냐를 사실상 리허설을 다 했어요. 그리고 가서 했죠. 마침 처음 시작할 때 이해찬 총리를 불렀죠. 총리도 처음이라 당연히 모르셔서 "총리 나오셨습니까?" 하니까 “네. 나왔습니다.” 해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나왔으면 인기척이라도 해야 한다. 이게 국제적인 관례이다. 실제 국제적인 관례가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총리가 다음 국무위원들은 그렇게 해달라고 제가 말을 했죠. 하고 나니까 다음 장관들은 나와서 “박 장관 나왔습니다.” “김 장관 나왔습니다.” 큰 소리로 외쳤었어요. 그리고 넘어갔는데. 그 이튿날 총리가 위원장인 사회복지위원회인가요, 장애인복지위원회가 있었어요. 그때 복지부 장관이나 장관들도 여럿 참석하고 장애인 단체장들도 여럿 참석했는데. 총리하시는 말씀이, 어제 내가 정화원 의원에게 굉장히 혼이 났다. 당연히 혼을 낸 것 같다. 우리가 장애인을 너무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장애 유형별로, 특성별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장관, 여러분들도 서로 그런 걸 이해하도록 하라고 하는 내용의 얘기가 있었다는 뒷소문이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국회에서 이런 것도 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정화원:
17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이쪽 당이든 저쪽 당이든 17대 이후로부터는 반드시 장애인 한 사람씩을 줘야한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말하자면 당헌당규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암묵적으로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해봤는데 역시 4년은 너무 짧아요. 지역구는 10번을 당선돼도 괜찮고. 비례는 1번을 원칙으로 한다는 걸 당헌당규에 넣어서 하니까 좀 제대로, 뭘 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4년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고. 지나고 나서도 잘 됐다고 생각드는 것은 제가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을 만들었어요. 이건 개정법이 아니고 제정법입니다. 없는 법을 새로 만든 거죠. 그래서 중증장애인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고 장애인 복지에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가지가 더 많겠지만 그때 안마가 위헌에 걸려있지 않았습니까? 위헌을 의료법에 다시 법으로 넣어서 안마 위헌을 구했다는 것, 등등 많이 있겠지만. 지금도 그건 그때 내가 없었다면 과연 됐겠느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됐고. 그리고 아쉬운 것은 제가 그걸 하려고 했어요. 장애인 연금법을 하려고 했는데 연금법이 당시에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고 양쪽 당에 다 부딪혀서. 연금법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가 되어야 해요. 하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불편하기 때문에 주는 보상이라는 거고. 또 하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약해서 보상을 해주는 두 가지. 한쪽에 20만원, 20만원씩, 40만원을 했었는데. 그게 안 된 것이고. 또 하나 더 있다면 미국 법처럼 장애인들에 대한,

앵커:
마지막 질문을 드릴 시간이 다 됐는데요. 저희가 시간이 다 되어서요.

정화원: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봐요.

앵커: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이 어떤 활동을 펴게 되는지도 설명을 해주시죠?

정화원:
이건 시민단체로서 인권단체로서 역할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직을 정비하고 새 출범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는 정부, 정책, 인권 모든 것이 법률이 제대로 되느냐. 모든 것들이 우리는 소비자입니다. 공산품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그런 면에 치중할 생각입니다.

앵커: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들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정화원 회장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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