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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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눈물, 진실은?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원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8-27 23:24  | 조회 : 3316 
세상을 바꾸는 정면승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눈물, 진실은?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원

[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4/08/27 (수) 오후 6시
■ 진 행 : 강지원 변호사

앵커 강지원 변호사(이하 강지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당시 대우그룹 해체는 기획된 해체였다, 라고 하면서 눈물을 보였는데요. 좀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정면승부, 오늘은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원(이하 박종규):
네, 안녕하세요?

앵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얼굴을 보이고 또 입을 열었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박종규:
글쎄, 본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회한이 있을 거고, 또 미련이 있을 테니까 그런 반응을 보인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당사자 한 쪽의 얘기니까요. 잘 균형감각 있게 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그 당시 얘기를 해보죠. 워크아웃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대우그룹의 부실 규모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박종규:
그 당시 대우가 망하고 정부와 채권단이 실사에 들어갔었습니다. 쭉 보니까 금융기관들이 대우한테 가지고 있던 채권이 은행 대출이라든지 회사채라든지 CP라든지 이런 게 전부 합쳐서 57조인데, 그 중에 손실 추정 규모가 31조 정도 됐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29조 8천억, 30조에 해당되는 돈이 공적자금으로 들어갔는데, 이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짐작을 해 본다면 공적자금이 1, 2차에 걸쳐서 조성이 되었는데요. 처음에 IMF가 와서 공적자금 만들라고 한 게 68조였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그것의 45% 정도가 대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죠. 어마어마한 대우 파산이 우리나라 건국 이래 최대의 부도였고요. 그로부터 미친 파장이 대단했죠.

앵커:
그런데 그 당시에 경제 상황은 그럼 어땠습니까?

박종규:
해외 상황을 보면 미국하고 서유럽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동유럽만 해도 체제 전환 이후의 혼란기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요. 아시아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문에 동남아가 다 나빴고, 그 영향을 받아서 일본도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도 97년, 98년에 자체적인 금융위기를 겪었었고요. 남미도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디폴트를 겪었고, 이어서 러시아가 또 디폴트를 겪었고, 그렇게 본다면 그 당시 세계 경제 상황이라는 게 미국하고 서유럽은 괜찮았는데 다른 모든 지역은 별로 안 좋았다, 특히 중국 같은 경우는 지금하고 많이 다르죠. 지금은 중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만 그 때는 WTO 가입 전이고 별로 국제 시장에서 중요한 플레이어가 아니었습니다.

앵커:
아무튼 그 당시에 실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다들 깜짝 놀랐어요. 완전히 손실될 거라고 추정된 것이 30조원이다, 라고 나왔었고요. 그 당시에 분식회계가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김우중 전 회장은 그 때 조사받고 복역하고요. 그러다가 특별 사면이 되었는데, 분식회계, 이 부분 좀 설명해 주시죠. 이건 말이 좀 어렵기도 하고요.

박종규:
분식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보면 분칠을 해서 장식을 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회계 장부를 실제보다 훨씬 좋게 꾸민 거죠. 말하자면 조작인 거죠. 대우가 부도가 난 다음에 정부가 들어와서 실사를 해 보니까 분식회계 규모가 23조원이 된다, 이렇게 나왔어요. 그런데 그거는 어디까지나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정확한 규모가 알려졌던 것이고, 그러면 그게 99년 말이었는데 그 전까지 몰랐었던 거죠. 그러나 뭔가 좀 이상하다, 이런 느낌은 다 갖고 있었다, 이렇게 기억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98년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6.7% 성장하고, 6.25 이래 최악의 침체였었는데 그런 상황에도 주식회사 대우라든지 대우자동차가 흑자를 낸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믿을 수 있겠느냐, 이상하다, 게다가 대우의 자금 흐름이라는 게 굉장히 복잡해서 정확한 모습은 김우중 회장 본인만이 안다, 이러던 차에 이게 이상한 게 나오니까 사람들이 신뢰를 할 수가 없게 되고, 게다가 98년, 99년이라는 상황은 우리나라 금융도 위기를 겪고 있었잖아요. 금융 구조조정을 99년에 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도 죽기 아니면 살기 위기 상황에 있었는데 대우라는 데가 이상하게 나가니까 시장의 신뢰를 확 잃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닻을 돌리고, 돈을 안 빌려주려고 하고, 그러니까 대우는 단기 자금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가 99년 7월이 되어서 3개월짜리 CP가 19조원이 들어옵니다. 그러다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가 없고, 버틸 수가 없고, 그러다가 망한 것이죠.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분식회계라든지 이런 것이 시장의 신뢰를 잃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대우의 몰락에 치명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솔직히 분식회계 안 한 기업이 있나요? 그 당시에, 지금은 어떻다고 말하긴 좀 그렇다 하더라도...

박종규: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도 분식회계 해 가지고 2001년에 일이 있었잖아요? 그랬었죠.

앵커:
그런데 이런 일로 인해서 워크아웃돼죠? 그런데 김우중 전 회장은 어느 점에 있어서 불만이라는 겁니까?

박종규:
글쎄요. 우리가 살 수 있었는데 정부가 살려주지 않았던 거 아니냐, 이런 불만인 것 같습니다.

앵커:
분식회계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얘기 안 했나요?

박종규:
하여튼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부가 우리를 안 살려줬다...

앵커:
기획 해체했다, 살려줄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죽였다?

박종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앵커:
그렇게 주장을 하는 거죠. 하여튼 대우그룹 몰락의 원인으로 꼽아 본다면 방금 분식회계, 그리고?

박종규:
가장 기본적으로는 대우그룹을 보면 67년에 직원 4명 데리고 시작한 건데, 30년이 지나서 97년이 되면 이게 굉장히 커졌지 않습니까? 재계 서열 3위가 되었고, 국내 직원만 7만 5천명, 자회사만 41개, 해외 140국에 580개 자회사가 있었대요. 대단했죠. 제국이죠, 제국. 그런데 역사를 보면 제국이 몰락하는 이유는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 영어로 overstretch, 자기 능력을 넘어서 영역을 너무 확장하다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는 건데, 대우도 똑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대우라는 회사가 자기 영역을 넘어서 너무 확장을 한 것이죠. 게다가 그걸 다 부채로 하다 보니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게 대우의 역사와 정신을 한 마디로 축약해주는 말이라고 보는데, 그 많은 할 일을 다 남의 돈으로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너무 빚이 많은 상태에서, 게다가 위기가 닥쳤을 적에 제대로 대응을 잘 못했던 거 아니냐, 이렇게 보는데요. 뭐냐면 98년의 IMF하고 금융위기라는 거는 어떻게 보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임의 법칙이 다 바뀌고, 그런 상황인데 김우중 회장님은 그거를 우리가 옛날 방식으로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거의 단기필마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을 하신 거죠. 그래서 과거 방식대로,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계속 했던 거고 그게 결국에는 성공을 못 해서 망했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대우그룹에 그 당시 투입된 공적 자금이 전부 얼마라고 하셨죠? 29조라고 하셨죠? 그런데 그 29조 다 회수하고도 남을 수 있었다, 이런 주장하는 거죠?

박종규:
네, 그렇죠. 그런데 그게 그 당시 팔려나갔던 계열사들이 지금 다 잘 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한 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 때 팔려나갔죠. 회사들, 여러 개.

박종규:
대우자동차니, 이런 게 여러 개 있지 않았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대우자동차가 GM에 팔려 나갔는데 GM이 그걸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 대우자동차가 굉장히 잘 되었다, 이건데 그렇게 생각이 들겠지만 지금의 대우자동차는 그 때의 대우자동차가 아닌 거죠. 리더가 바뀐 거고 구조조정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거지, 그래서 그렇게 잘 할 수 있었는데 망하게 했다, 라고 본인이야 그런 마음이 왜 안 들겠습니까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건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앵커:
방금 대우자동차 말씀을 하셨는데, 대우자동차를 그 당시에 GM에서 인수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지금 의견의 차이가 있는 거에요?

박종규:
제 생각엔 이렇습니다. 99년에 들어와서 대우가 구조조정안을 2차로 발표하는데요. GM과의 매각 협상을 99년 4분기에 하겠다고 해 놔요. 그래서 99년 1, 2, 3분기에는 아무런 액션이 없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우가 결정적으로 어려워진 게 98년 여름부터 CP 조달을 못 하게 하고 자금사정이 극도로 나빠졌었는데 그러다가 98년 말에 노무라증권이 대우가 유동성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리포트가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점점 시장의 분위기가 돌변을 하고, 99년 7월이 되면 피치라고 신용평가사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대우 신용등급을 CCC로 강등을 해요. 이거는 언제라도 부도가 날 수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99년 7월 달에 아까 말씀드린대로 CP가 3개월짜리 채무가 19조원이 돌아오니까 전체 부채가 44조원 정도 되는데 엄청난 양의 단기 부채가 돌아오니까 어쩔 수 없이 부도가 날 수밖에 없었는데, GM과의 그거는 그 해 말로 잡아 놓고 있으니까 그 사이에 그럼 어떡하느냐, 그런 시점의 불일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매각 협상이라는 게 삼성과의 빅딜 건수도 보여줬듯이 될 듯 될듯하다가 계속 안 되고, 이런 거기 때문에 그걸 100% 믿고 놔둘 수가 없었던 것이죠. 올인을 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고 대우를 살려 줄 수가 불가능했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99년 7월 달에 돌아온 19조원, 그 CP, 그거 막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 김우중 전 회장은 뭐라고 얘기할까요? 그 당시에 그거 막을 수 있었다?

박종규:
글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이런 얘기 같은데...

앵커:
그런데 안 도와줬다, 이런 얘긴가요?

박종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커다란 전제 같아요. 너무 커다란 가정 같습니다.

앵커:
그 당시에 이렇게 부실한 대기업들 많았잖아요? 간판 내린 데가 얼마나 많습니까, IMF 때.

박종규:
30대 재벌 중에 반이 사라졌죠.

앵커:
유명한, 지금은 다 기업 속에 사라진 재벌들이 다 문 닫았었는데, 대우라고 특별히 다르다고 볼 만한 이유가 있냐, 이런 얘기죠.

박종규:
한 가지는, 98년 같은 경우에는 우리 그 때 부채 비율 200%를 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IMF가 오자마자. 그래서 5대 재벌 같은 경우, 삼성, 대우, 현대, SK, LG, 이랬어요. 그 때 5대 재벌 구성이. 다른 재벌들은 다 부채 비율을 낮춥니다. 그런데 대우만 부채 비율을...

앵커:
그 때 왜 고집 부리고 부채 비율을 안 낮췄답니까? 할 수가 없었나요, 아니면 안 한 건가요?

박종규:
그건 정확한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제 짐작에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수출 주도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투철한 신념이 있었던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다 규모를 줄여라, 사이즈를 줄여라, 이런 것이 구조조정의 흐름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쪽으로 밀고 나갔던 것, 그리고 이것도 짐작이긴 합니다만 본인이 그 때 전경련 회장이었고...

앵커:
당시 김대중 정권 때였죠. 굉장히 정권하고 친한 것처럼 말해졌었는데.

박종규:
그런 쪽에서 영향력이 있다, 라고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런 게 없었다면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허리띠를 졸라 매고 처음부터 했었다면 대우는 살 수도 있었다, 이런 평가가 많았었습니다.

앵커:
IMF 당시 때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당시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평가를 이 시점에 와서 해 보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종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IMF를 1년 만에 극복했다고 샴페인도 터뜨리고 자화자찬을 했었죠. 물론 한국 경제가 정말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는 했었습니다. 왜냐면 그런 위기를 맞아서 1년 만에 극복을 했다는 게 쉽지가 않은 거거든요. 굉장한 어려움이었었는데...

앵커:
금모으기를 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박종규:
네, 그랬었죠. 굉장히 감동적인 그런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왜 빨리, 빨리 하지 않습니까? 극복도 빨리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김우중 회장님이 주장하신 것처럼 제조업이 너무 죽었다, 그 때, 그리고 제 생각에도 파산이 너무 많아서 불필요하게 실업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그게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 대규모 실업자들이 전부 자영업으로 돌아갔고,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져서 자영업 소득이 늘지를 못해요, 그 때 이후로. 그런 걸 포함해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이 있었고 그랬는데, 그 때 너무 IMF라는 요구가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국익인데 글쎄요, 그 분들이 정말 국익에 투철하고 국익 말고 다른 건 생각 안 하셨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때 좀 더, 이를테면 IMF에 읍소를 하든지 좀 더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서 요구 조건을 좀 완화시키는 쪽으로 했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 물론 그런 노력을 물 밑에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런 노력이 너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여기서 마쳐야 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종규:
네.

앵커:
지금까지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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