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 진행 : 신율 / PD: 신동진 / 작가: 강정연,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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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일의 기록 “ 매일 바지선 타느라 멀미약만 몇 박스째 먹어...” -이승구 PD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7-24 20:12  | 조회 : 3248 
정면 인터뷰2.
세월호 100일의 기록 “ 매일 바지선 타느라 멀미약만 몇 박스째 먹어...”
-이승구 PD

[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4/07/24 (목) 오후 6시
■ 진 행 : 강지원 변호사

앵커 강지원 변호사(이하 강지원):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째를 맞이해서 오늘 뉴스 정면승부에서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세월호 100일간의 변화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100일이라고 하는 시간 동안 구조 현장은 물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 오신 분입니다. 카메라를 통해서 세월호 100일을 기록한 이승구 PD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구 PD(이하 이승구):
안녕하십니까?

강지원:
우리 이승구 PD님은 여러 가지 재난 전문 PD님으로 알려지셨어요. 그죠? 대구 지하철 참사, 후쿠시마 일본 대지진, 또 중국 쓰촨성 대지진 같이 이런 재난 지역을 주로 취재를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재난 문제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이승구:
특히 재난 지역에서는 역사적인 사건 아닙니까? 그러다보니까 그 역사적인 현장이 일어나는 곳에서 제 눈으로 직접 현장을 취재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PD의 특권이 아닐까, 이런 것 때문에 계속 그 현장을 찾아가게 되고 또 그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본모습들, 그것들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강지원: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오늘 스튜디오에 들어오시는 걸 보니까 전에 뵈었던 분 같아요.

이승구:
네, MBC에서 취재차 제가 강지원 변호사님 취재하러 갔었습니다.

강지원:
반갑습니다. 재난 전문 PD님이 되셨네요. 이번 세월호 촬영은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이승구:
사고 난 이후에 4월 20일부터 저희 독립 PD들이 모여서 같이 기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지원:
그러셨군요. 그래서 쫓아 내려가셨습니까?

이승구:
네, 사고 초기, 그러니까 4월 17일 새벽에 제 친구가 전화가 왔어요. 자기 조카가 세월호 배 안에 있다, 아직 구조가 못 되었다, 울면서 팽목항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 때부터 고민이 되었었죠. 많은 언론들이 있었지만 그 언론들이 지금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너는 독립 PD니까 제대로 기록을 해 달라, 이런 부탁이 있어서 고민하는 와중에 우리 독립 PD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강지원: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조카는 어떻게?

이승구:
네, 찾았습니다. 5월 4일에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강지원:
사망한 채로... 그랬군요. 조금 전에 말씀하시길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걸 정말 취재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던데 그 당시에 유가족 분들이나 가족들 쪽에선 그런 분위기가 많았습니까? 기성 언론들이 잘 보도를 안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이승구:
네, 그 때 당시에 언론 보도에는 잠수사가 몇 백 명 들어갔고, 함정이 어떻게 투입되었고, 항공기가 어떻게 지원되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현장에 있던 가족들은 그것을 전혀 보지 못했고 또 잠수사들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도 못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사비를 들여서 어선을 임대해서 직접 배를 타고 현장에 가고, 그래서 그 때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해경 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배들에게 가서 왜 작업을 안 하냐, 빨리 들어가라, 이렇게 요구도 하셨고, 그랬다고...

강지원: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으면 그랬겠어요?

이승구:
그럼요. 그 안에 사랑하는 자기 아들, 딸, 그리고 가족들이 들어 있는데...

강지원:
그런데 그 이후에 속속 밝혀진 바에 의하면 도대체 해경을 비롯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침몰하는 거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이승구:
네, 거의 가족 분들 증언에 비하면 그 모든 것들이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3일 동안, 그저 죽기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죠.

강지원:
골든타임을 놓친 정도가 아니고 그 이후의 후속 조치도 아주 형편이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죠. 다 샅샅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그 당시에 그래서 가시자 마자부터 취재를 시작하셨겠군요? 그 당시에 그 곳 사정은 어땠어요?

이승구:
그 당시에 저희가 여러 독립 PD들이 모여서 같이 취재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안산 쪽에 있었고요. 그리고 일부 PD들은 팽목항과 진도 체육관을 오가면서 취재를 했었어요, 사고 초기에는.

강지원:
이승구 PD님께서는 팽목항이나 그 쪽도 가셨었습니까?

이승구:
저는 어느 정도 사고 이후에 5월 말 정도에, 그래서 거의 많은 학생들을 찾고 수습한 상황에서 진도 체육관에 3주간 있다가 5월 말 쯤에 진도 체육관으로 내려갔죠. 그 때 내려갔을 때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 않아서 그 때가 16분 정도가 남았을 때인가 그 때 제가 내려갔습니다.

강지원:
참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느끼셨어요?

이승구:
사고 현장에서 자기 가족을 찾는 부모의 모습, 가족들의 모습, 이것은 전 세계 어디나 똑같다, 라는 생각이 들고요. 정말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강지원:
그런데 가족 분들을 위로해야 되고 그래야 할 입장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촬영을 하시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가는데요.

이승구:
네, 처음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사실 카메라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저희가 피사체를 찍을 때 그 피사체가 봤을 때 이 카메라는 무기가 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고요. 우리가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는 하지만 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그러지 않고 초기 화면을 담기 위해서 급급하다보니까 양해 없이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저희가 기록을 함에 있어서 우선 가족들에게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동의를 구한 이후에 모든 기록들을 하겠다, 라고 말씀 드리는 과정이 조금 길었어요.

강지원:
말씀을 드리셔서 동의를 결국은 받으셨습니까?

이승구:
네, 처음에 안산에서 2주 정도 계속해서 대책위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에 찾아가서 저희는 독립 PD들이고 이런 기록들을 하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의심을 하셨죠. 똑같은 언론인데 우리가 어떻게 믿겠냐, 계속해서 안산 분향소에 가서 얼굴 비치고 거기서 계속 지내면서 그 분들이 저희들 모습 보면서 이제 한 번 기록을 담아보는 게 어떻겠냐, 이렇게 말씀해 주셨고, 또 진도 체육관은 상황이 달랐어요. 진도 체육관에 내려갈 때는 6반의 장환이 아버님하고 같이 내려갔거든요. 6반의 아직 남아있는 박영인 학생과 남현철 군이 아직 6반에서 실종자로 있거든요. 그 부모님을 만나면서 인사를 드리고 거기에서도 쉽게 카메라를 바로 촬영하진 못하고요. 그 분들과 같이 먹고, 자고 지내면서 같이 저희들 하는 모습을 보시고 먼저 왜 PD인데 카메라 가져왔는데 찍지를 않느냐, 이런 말씀을 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기록에 남기라고 허락해 주셔서 그 때부터 기록했습니다.

강지원:
참 잊지 못할 그런 장면이나 광경도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간단히 정리를 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고통 받으시는 유가족들의 장면도 물론 있을 것이고요.

이승구: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모님들이 끝까지 자녀들을 찾고자, 또 가족들을 찾고자 하는 그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이 아니었나, 그들의 눈빛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거는 내 자식이 저 안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편히 누워서 먹고 마실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내 자녀가 분명히 있는데 구하지 못하는 그런 현재 상황을 말씀하실 때, 가장 기억에 남고요. 이게 만약에 산이었다면 그 산을 옮길 수 있었겠다, 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부모님들이. 바다다보니까 들어가기 어렵고 또 잠수하시는 분들한테도 기대감이 크고 그러십니다.

강지원:
언제까지 계시고 최근까지는 어떻게 취재를 하셨어요?

이승구:
최근까지 제가 이번 주 월요일에 갔다가 화요일 날 다시 올라왔거든요. 저희가 MBC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세월호 100일 기록을 방송을 했고요. 그 이후에 방송이 있는 날 가족 분들하고 같이 보려고 진도에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 분들한테 다시 방송에 대해 설명 드리고 그리고 그 이후에 방송과 여러 채널에서 오는 피드백들을 다시 가족들한테 설명 드리고 화요일 날 다시 올라왔습니다.

강지원:
지금 말씀하시는데 아주 장면들이 눈앞에 선하신 것 같은 그런 표정을 하시는데요. 분위기를 좀 바꿔보죠. 이제 100일째가 드디어 되었습니다. 가족 분들 건강이라든가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고통이 심하실 것 같아요. 피부로 느껴지시죠? 지금 열 분밖에 남지 않으셨는데, 구조 과정도 기록이 가능했습니까?

이승구:
구조 과정도 저희 PD들이 촬영을 했고요. 수습이죠. 구조라기보다는 수습이라는 말이 정확하고요. 시신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그 현장에서 최근에 안중근 학생 수습할 때 저희 PD가 한 분이 바지선에서 그걸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올라올 때도 중근이 아버님은 자식인지 모르셨어요. 결국에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보니까 중근 학생이 입었던 옷, 의류를 통해서 자식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들...

강지원:
초기 과정에서 얼마나 엉성한 구조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선 이미 다 알려져 있고요. 나중에 수습 과정에서는 그래도 질서 있게 진행이 됐나요?

이승구:
지금 현재도 수습하고 있는데 지금은 바지선 2대가 빠졌습니다. 태풍이 지금 중국 쪽에 영향을 미쳐서 파도가 높아지니까 작업하기 위험한 상황이어서 오늘 바지선을 뺐다고 하더라고요. 방금 오기 전에 제가 통화를 황지연 양 아버님과 했습니다. 그 지연 양 아버님은 매일 같이 바지선을 올라가세요. 지금까지 드신 멀미약은 몇 박스 정도 될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루에도 4병, 5병씩 드시더라고요. 멀미가 심하신데도 불구하고 꼭 들어가서 자식을 찾겠다, 라는 그런 의지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아버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지금 바지선이 동고타저에 빠져 있다, 그러면 피항을 목포까지 안 간다, 다시 물결이 잦아지면 다시 들어와서 작업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난번보다는 작업시간이 많이 늘어나서 기대감이 큽니다.

강지원:
혹시나 유실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까, 그걸 많이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승구:
가족 분들한테 유실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희망을 버려라, 라는 말과도 같다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마지막 한 명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저희는 기록할 거고요. 그리고 가족 분들도 그렇게 믿고 계십니다. 주위에서는 사실 이렇게까지 시간이 길게 지났는데 너무하지 않냐, 이제는 인양해야 하지 않냐, 이런 말씀도 나오세요. 그런데 하지만 그게 바로 내 자식이고, 내 자녀고, 내 가족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강지원:
그런데 걱정되는 거는 나중에 정말 최종적으로 유실되어서 못 찾는 사태가 발생했을 땐 그게 너무 걱정이 돼요.

이승구:
그 때는 아마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지 저도 상상이 안 갑니다.

강지원:
앞으로 영화로도 만드신다고요?

이승구:
네, 저희가 어떻게 특별하게 다큐멘터리, 이런, 이런 영화다, 라고는 아직 정하지 않고요. 기록자로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우선 두었습니다. 이제 1년 동안 기록을 하고 그 이후에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그건 아직 저희가 기록하는 중간이어서 정하진 않았습니다.

강지원:
그렇게 기록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유족들이 아신다면 거기에서도 위로를 받으셨으면 더 좋겠네요. 취재를 쭉 하신 과정을 정리해보시면 이건 정말 잘못했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이런 느낌 갖지 않으셨어요?

이승구:
안전에 대한 문제죠. 가장 큰 게 안전에 대한 문제고, 또 구조에 대한 문제도 생각이 되는데요. 제가 각 나라 재난 지역을 다니다보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비교가 되고 하는데 사실 재난 이후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이 되고요.

강지원:
국가가 그거 안 하면 뭐 합니까? 국가가 뭣 때문에 있습니까,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거지.

이승구:
그런데 지금 아시다시피 한 사람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한 정말 이런 일은...

강지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거에요, 아마.

이승구: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보니까 이런 데에 있어서도 정말 우리나라... 가족 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전혀 체계도 없고, 오합지졸이고, 책임자도 없고, 누가 책임질 사람도 없고,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정말 분통해하시고 울면서 목소리 높이시는 가족 분들이 많으세요.

강지원:
제가 법률 공부한 사람인데요. 이거 예를 들면 민사 소송을 건다고 칩시다. 제가 전에 피해자들을 위해서 제가 변호사 할 때는 그런 걸 해 봤는데, 선주나 이쪽에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그런 사람 뿐 만 아니고 구조에서 제대로 못 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못 구했다고 한다면 거기에 관련된 구조 책임을 맡은 사람들, 그래서 그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서 지금 저렇게 법을 만든다고 저러고 앉아 있는데요. 참 답답한 일이죠. 혼내줘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정말 어려운 일을 하시는 과정에서 모처럼 시간을 내 주셔서 나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요. 또 우리 이승구 PD님 같이 이런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일이 우리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이승구:
네, 감사합니다.

강지원:
지금까지 이승구 PD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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