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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이었던 유병언, 역사 속의 도망자는 누가 있었나?"-강응천 문사철 대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7-22 10:25  | 조회 : 4447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세대와 시대의 봉우리를 넘어(세시봉) : 강응천 문사철 대표



앵커:
구속영장까지 재발부 되면서 오리무중이었던 유병언, 지금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확인을 해봐야 하는 문제이죠. 조금 전에 물론 표창원 박사께서는 거의 확실하다는 얘길 했습니다만 잠시 후 오전 9시에 경찰의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어떤 얘기가 나올진 모르겠지만 검찰과 경찰이 여태까지 헛발질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비가 모자랐을 옛날에는 어떻게 도망자들을 수색하고 쫓았을까요? 오늘 역사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문사철 강응천 대표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세요.

강응천 문사철 대표(이하 강응천):
네, 안녕하세요.

앵커:
과거에도 도망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죠? 조금 있으면 <군도>라는 영화도 나온다고 하던데.

강응천: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죠. 국가에 죄를 짓고, 반역을 했다거나 사또에게 민란을 일으켜서 해코지를 했다거나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사람들은 도망 노비나 부역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농민들 이었을 텐데요. 이런 사람들이 만약 도망을 하게 되면, 이번에 유병언도 그랬지만 밀항을 했겠죠? 바다건너 섬으로 가면, 조선시대에만 하더라도 공도정책이라고 해서 섬을 아예 비워뒀으니까 섬으로 가서 일본 쪽으로 갔는데. 조선 초기에만 해도 왜구의 피해가 심했거든요? 심심하면 대마도나 일본 서부 해안에서 우리 해안을 노략질 했었는데, 거기에 가담해서 왜구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인들이 꽤 있었다고 해요. 아마 그게 임진왜란 때도 꽤 많은 역할을 했을 거예요. 그런 일들이 많으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조선에다 조공을 바치라고 대마도에다 윽박질렀는데 당시 대마도는 중간에 끼여서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답을 받아내야 하니까 일본으로 도망갔던 조선 사람을 잡아다가 돌려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일본으로 밀항을 하지 않으면 북쪽 국경을 넘어서 백두산으로, 압록강, 두만강, 그것도 밀항이죠? 강을 건너가야 하니까. 그쪽으로 밀항을 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게 굉장히 큰 범죄자들, 유병언급의 큰 범죄자들이 많았어요. 특히 국가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들, 예를 들어, 고려 때 조위총 이라는 사람은 무신정권에 반기를 들고서는 반란이 잘 안되니까 당시 금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는데 금나라가 안 받아주는 바람에 잡힌 적이 있었고요. 몽골이 쳐들어오기 전에 최탄이라는 사람이 몽골제국 체제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잘 안돼서 넘어가니까 몽골에서 받아줘서 오히려 그 친구에게 고려의 땅덩어리를 하사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식의. 반역을 하고서 외국으로 도망가서 그곳에 귀하게 하고서 우리 민족에게 다시 해를 끼치는 매국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른 경우가 꽤 있었어요. 고려 때 유명한 매국노로 홍복원 이라는 사람을 많이 꼽고요. 그다음에 조선시대에도 이시애 라는 사람이 세조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잘 안되니까 여진족과 합세해서 조선을 들이치려고 한 적이 있었고. 병자호란때 정명수 라는 사람은 청나라의 앞잡이로 악명을 떨쳤던 등등 이러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유병언 처럼 희대의 도망자로 꼽힐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강응천:
여러 사람들이 있었겠죠. 제가 어제 역사책을 뒤져보니까 18세기 1728년에 ‘이인좌의 난’이라는 유명한 반란 사건이 있어요. 영조가 등극을 했는데 그걸 반대하고 영조 이전에 배다른 형이었던 경종이라고, 유명한 장희빈의 아들이 원래 왕으로 있었고 영조는 원래 왕세제였단 말입니다? 세제는 왕위를 물려받게 될 동생을 의미하는 거죠. 경종이 몸이 약한데 영조와 영조를 둘러싼 노론들이 독살을 시켰다는 얘기가 도니까 그런 사람들이 주로 소론이나 남인 쪽에 많았습니다. 이인좌 라는 사람도 소론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세력 중 황진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인좌나 다른 반란의 주모자들은 다 잡혔는데 황진기는 안 잡히고 도망을 쳤어요. 그런데 도망이 아주 신출귀몰하게 빠져 달아나서 결국은 안 잡혀서, 조정에서는 청나라로 갔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는데 국내에서도 이 사람과 관련된 일들이 계속 끊이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미 난이 진압된 건 1728년인데 6년이나 지난 1733년에 황진기가 데리고 있었던 여자 노비, 비(婢)이죠? 노(奴)는 남자 노예고 비(婢)는 여자 노예니까. 이 여자 노비가 궁중으로 들어가서 궁중에서 일종의 비정규직 궁녀로 일하는 게 발견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희대의 도망자의 노비가 궁중에 들어와서 4년을 살고 있었다고 한 거니까 궁궐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굉장한 충격이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년이 지난 1747년까지도 유명한 도망자 황진기의 자취가 남는데,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국경을 넘어서 삼을 캐려고 청나라 지역에 들어갔다가 잡혔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신준정 이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에게 “너 왜 넘어오려고 했니?” 하니까 “내가 황진기를 쫓아서 잡으려고 하다가 국경을 넘었다” 라는 말까지 하는걸 보니까 당시엔 황진기 라는 도망자가 굉장히 신출귀몰하고, 나라 전체에서 긴장을 하고 잡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간 것 같고요. 심지어는 어떤 양반들이 집안의 사위 3명이 도망간 노비를 잡으려고 가다가 노비를 만났는데 역으로 노비들에게 잡혔답니다. 노비들이 안 잡히려고 사위들을 잡았는데 그 사위들이 꾀를 내서 우리 중 한 명이 황진기라고 말을 했답니다. 내가 황진기라고 하니까 노비들은 얘를 죽이는 것보다는 관에다 갖다 바치면 포상도 받겠다 해서 관에다 갖다 바쳤다가 꾀에 넘어가서 잡힌 사례도 있었으니까, 아마 조선 최대의 도망자 중 하나, 어떻게 보면 유병언은 상대도 안 되는 도망자가 황진기 라고 할 수 있겠죠.

앵커:
노비 얘기하니까 <추노>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나는데요. 조선시대의 도망자는 대부분 노비 아닙니까?

강응천:
그렇습니다. 노비들의 삶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요. 어떤 노비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겨울에 꽁꽁 언 얼음 위를 쌀가마를 지고 가는데 가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푹 꺼진 거죠. 빠져서 죽어나갈 위기인데도 주변 사람들이 쌀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는데 안 내려놓더래요. 차라리 죽는게 낫지 쌀짐을 내려놨다가 당할 고초를 생각하면 내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그 정도로 노비들의 삶이 처연했으니까 조선시대 때는 도망 노비들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고. 조선시대의 최대 범죄라고 한다면, 살인도 주인이 노비를 죽이는 건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노비가 주인을 죽이기는커녕 얼굴에 생채기라도 내면 죽을죄가 되는 거거든요? 이런 정도에 처해있으니까 그걸 ‘강상의 죄’라고 해서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해코지 하는 죄가 되니까 이걸 못 견디고 노비들이 도망가는 사례가 많고. 나중에는 워낙 이런 일이 많다보니까 그걸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뿌리칠 뿐만 아니라 아예 주인들을 죽여 버리자는 계를 드는 노비들도 생겨납니다. ‘살주계’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노비 문제는 도망 여부를 떠나서 심각한 문제였죠.

앵커:
추노라는 수사관들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있었습니까?

강응천:
그건 확실하지 않아요. 추노라는 전문적으로 노비를 쫓아다니는 사냥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고려시대 때부터 ‘추쇄도감’이라고 해서 도망간 노비나 부역을 회피한 사람들을 찾아오고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특별기관이 종종 개설이 되고, 그러면 추쇄도감 같은 데서 의금부도사나 수사관들을 동원해서 도망간 노비를 찾게 했겠죠. 성종 때 제주도의 경차관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표류를 당해서 중국으로 갔던 최부 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 사람은 표류기를 남겨서 굉장히 유명해진 사람인데요. 그 사람이 경차관으로 제주도에 간 것도 도망간 노비들을 되돌려 놓기 위한 임무도 있었다고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유병언 같은 경우에는 뭐가 진실인지 뒤죽박죽이 돼버렸어요. 20억을 들고 다닌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만일 이번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됐을 경우에는 그것도 뻥이라는 얘기 밖에 안되거든요? 그렇다면 당시 도망친 노비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어요?

강응천:
그때는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런 게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미국에서 링컨이 노예 해방을 한 것은 남부 플랜테이션의 노예들을 풀어서 막 산업화 되던 북부의 공장의 노동자로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도 후기로 가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서 전반적으로 노비들이 도망가면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데 이걸 임노동자처럼 고용을 해서 일당이나 월급을 주면서 하는 자본주의 비슷한 고용의 형태가 생겨나요. 그리고 국가에서 무덤을 짓는다거나 성을 지을 때도 도망간 노비나 떠도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먹을 걸 줘가면서 공사를 시키거든요? 나라에서 강제로 노역을 시키는 게 아니라. 도망간 노비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그런데 지원을 하는 거죠. 심지어 정조 때 수원화성 짓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 임금을 줘가면서 한 거거든요. 청계천을 보수 공사한다든지 이런 곳에 노비들이 신분을 숨기고 들어가서 노동력으로 충원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진짜 재밌었어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응천:
네.

앵커:
지금까지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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