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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초대석

[쉰일곱번째 손님] 신곡 막걸리 추억으로 돌아온 한국의 레이찰스 가수 이용복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2-02-01 17:35  | 조회 : 3064 
- 70년대를 풍미한 통기타 가수 이용복

■ 방송 : FM 94.5 (03:10~4:00)
■ 진행 : 전진영 아나운서
■ 손님 : 가수 이용복

앵커 : YTN 톡톡 초대석 가수 이용복씨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용복 : 안녕하세요.
앵커 : 반갑습니다. 방송출연은 오랜만아시죠?
용복 : 글쎄요. 그렇지 않는 것 같은데요. (웃음)
앵커 : YTN 라디오 출연은 처음이시니까, 청취자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용복 : YTN 광청자입니다. 뉴스와 음악이 적당히 잘 조화된 좋은 방송입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애청해 주시고요.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는 방송이라
굉장히 나오고 싶었고요. 57번째 손님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얼굴에 햇살만 비추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앵커 : YTN 톡톡 초대석, 가수 이용복씨와 함께 하는데요.
함께 하고 싶은 분들 #0945번으로 문자 보내주세요.
안부인사, 근황 질문 등 궁금한 이야기들 보내주세요.

앵커 : 많은 분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용복 : 라디오 라이브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기타를 가지고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신곡을 불러드리고 있고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앵커 : 얼마 전에 신곡 발표하셨잖아요. 제목이 ‘막걸리 추억’이예요.
제목 그대로 막걸리에 얽힌 추억에 관한 노래인가요?
용복 : 그렇습니다. 막걸리에 얽힌 추억노래이긴 하지만,
사실 주인공은 할아버지에요.
앵커 : 어떻게 이 노래를 만드시게 된 거예요?
용복 : 개그맨 최영진씨가 이 노래를 가지고 왔어요. 가사를요.
보니깐 누구다 다 공감할 수 있는 노래더라고요. 그래서 손도 좀 보고
곡도 붙이고 반주도 만들고 해서 부르게 되었죠.
제가 부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어요. 전부 ‘내 이야기잖아’ 라고 해요.
앵커 : 저도 미리 들어봤더니 가사가 참 재미있어요.
조금 읽어드리면, 말씀하신 대로 주인공은 할아버지고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아버지 막걸리 좋아하셨지
저녁노을이 물들 때면 막걸리 심부름 간다네
잔돈은 너 가져라 그 말씀에 하늘로 날아갈 듯 기분 좋아
주전자 챙겨 들고 라라라 심부름 간다네
한 모금 꼴깍 달짝지근 어느새 얼굴 빨개’
용복 : 자꾸 넘치니까~
앵커 : 그 시절에 막걸리 심부름을 많이 하셨죠. 저희 아버지도 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많이 했었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용복 : 그렇죠. 찰랑찰랑 조심조심 가다가 마셔보면 맛있잖아요.
그러다보면 주전자가 많이 비어요. 그래서 물도 붓고 그랬죠.
앵커 : 그런 경험 있으셨나요?
용복 : 사실, 저는 할아버지랑 떨어져 살아서 그런 경험은 거의 없지만,
이웃의 친구들은 이런 추억들이 거의 다 있더라고요.
앵커 : 개인적으로 막걸리는 좋아하세요?
용복 : 네, 좋아합니다. 제가 지금 양평에 사는데요. 3일, 8일이 장날이에요.
장날이면 장에 가서 족발, 전하고 막걸리 마시는 재미가 쏠쏠해요.
앵커 : 이용복씨가 주로 활동하셨던 시대가 70년대인데요.
히트곡이 굉장히 많으세요. ‘마음은 집시’ ‘사랑의 모닥불’, ‘줄리아’, ‘달맞이꽃’,
그 중에 저는 이 노래를 딱 알겠더라고요. 첫 곡으로 나갔던 ‘어린 시절’
♪진달래 먹고~ 이 노래는 지금 어린이들이 동요처럼 부르는 곡이에요.
용복 : 그 노래를 불렀던 청량한 목소리의 어린이가 지금은 오십이 넘었어요.
대학교수가 되었고요. (웃음)
앵커 : 이 노래가 번안곡이죠. 그 시절에는 번안곡이 참 많았었죠?
용복 : 그렇죠. 그 시절에는 오리저닐, 번안곡 반반씩 있었어요.
이 노래가 일본차트에서도 1위를 했었어요. 제 노래가 아니고, 원곡이요.
앵커 : 원곡이 Playground in My Mind인데,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기도 했고요.
앵커 : YTN 톡톡 초대석 가수 이용복씨와 함께 하고 있고요.
교통정보 들은 후에 이용복씨와 함께 하는 라이브 시간 가져볼게요.

-교통정보-

앵커 : 이용복의 막걸리의 추억 라이브로 들어봤습니다.
기타 연주도 해 주셨고요. 정말 목소리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가사도 정말 흥겹고 재미있네요.
용복 : 많이 사랑해주세요.
앵커 : 9070번님, 한국의 스티비 원더입니다. 반갑고요.
TV나 라디오를 통해서 자주 뵙고 싶어요.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는 별명을 갖고 계세요.
용복 : 스티비 원더, 호세 펠리치아노, 레이찰스 등 많습니다.
앵커 :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뮤지션이세요.
어릴 적에 사고로 시력을 잃으셨다고 들었어요.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꾸셨나요?
용복 : 사실 눈을 다친 다음에 외롭게 지냈어요. 아이들이 잘 놀아주지 않아서요.
그래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라디오를 듣다보니 음악이 좋아지더라고요.
제가 다섯 살 때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냈어요.
그러니깐 어른들이 신기해하면서 ‘신동 났다’ 했고요.
커서 가수하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먹었죠.
그러다가 한때 기타리스트가 되어보려고 하다가 중3때 보컬 그룹이 유행하더라고요.
락 밴드요. 비틀즈, 롤링스톤 같은 밴드요.
그래서 우리 시각장애인들도 그룹을 만들어보자 했는데,
대부분 선배들이 가난했거든요. 시골에서 논밭 팔아서 드럼사고 기타샀 는데,
노래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하게 되었고, 가수의 꿈을 키웠죠.
앵커 : 악보를 보고 기타연습을 하는데, 악보를 보는 게 용이하지 않는데,
어떻게 기타 공부를 하셨는지요?
용복 : 점자 악보도 있었지만 악보에 의존하기 보다는,저는 고무줄을 상자에 매서
손으로 눌러가며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면서 배웠습니다.
앵커 : 하모니카도 연주하시잖아요?
용복 : 어렸을 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악기가 하모니카였어요.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시면 사다주셨죠. 그래서 연주하게 된 거고요.

앵커 : 중3때 밴드활동하시고 고등학교 때 음악부장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학교의 음악행사를 도맡아 하는 직책이 음악부장인데
그때부터 음악이 내 길이구나 라고 느끼셨나요?
용복 : 솔직하게 고2때 데뷔를 해서, 음악부장 역할은 잘 못했어요.
음악부 차장한테 다 맡기고 전 사회에 나왔죠.
앵커 : 고등학교 때 데뷔를 하셨는데요. 데뷔사연이 흥미로워요.
음악다방 놀러갔다가 하셨다고요. 학생이 음악다방에 가셨나요?
용복 : 옛날 다방은 건전했어요. 아버지 바지 몰래 입고 갔는데요.
다방에는 밴드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자꾸 노래를 하라고 해서,
했다가 작곡가분 한테 띄어 데뷔 했죠.
앵커 : 당시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가 부족했을 것 같은데요.
당시 대중들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시각은 어땠나요?
용복 : 당시에는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시각뿐 아니라
지능까지도 장애가 있다고 의심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니깐 신기하게 받아들였고,
어떤 점에서는 저한테 유리했어요. 더 잘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장애가 약점도 되지만 강점도 되었죠.
앵커 : 처음에는 대중들이 신기한 눈으로 주목을 했다가 나중에는
연주 실력 및 음악성을 인정했는데요.
70년대 통기타 연주자 세 손가락에 꼽히셨다고요.
다른 두 분은 어떤 분인가요?
용복 : 저는 잘 모르겠는데, 송창식, 김민기씨 모 이렇게 있었죠.
앵커 : 기타연주 음반도 최초로 내셨어요?
용복 : 네, 그랬고요. 동료들 기타세션도 했고요.
앵커 : 양희은씨의 데뷔음반 아침이슬도 하셨네요.
용복 : 네, 그 곡이 정말 유명했었죠.
연주를 애드리브로 했어요. 김민기씨 코드 들으면서 애드리브로 한 거예요.
앵커 :앨범 녹음을 애드리브로 하나요?
용복 : 최초였을 거예요. 지금 들어보면 안 맞기도 하고요.
그게 오히려 풋풋하더라고요. 1절 다르고 2절 다르고 그랬죠.
앵커 : 일부러 그러셨나요?
용복 : 서로 바쁠 때라 시간이 안 맞아서 그런 것도 있죠.
앵커 : 아침이슬이 지금까지도 사랑을 많이 받는 국민 대중가요잖아요.
뿌듯하시겠어요.
용복 : 네, 한때 금지곡이었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죠.

앵커 : 70년대 정말 이용복씨 전성기였을 때 수상도 많이 하셨고요.
이용복씨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2편이나 제작되었어요.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그리고 ‘이용복의 어린 시절’
용복 : 제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출연을 했는데,
저는 연기 욕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조금 잘생긴 남진 선배님이 하셨고.
‘어린 시절’ 영화 할 때는 제가 강력하게 연기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아역에는 김정호씨가 했고, 성인연기는 제가 직접 했어요.
앵커 : 1271번님이 이용복 선생님 영화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를 본 기억이 납니다. 라는 문자를 보내주셨네요.
이용복 선생님의 인생자체가 워낙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된 것 같은데요.
앵커 : ‘이용복의 어린 시절’ 영화 찍을 당시 연기 좀 어렵지 않으셨어요?
용복 : 동시녹음이 아니어서 감정을 잡기 어려웠어요.
연기도 처음이었고요. 한 번에 하지 않고 한 장면씩 해서요.
여배우하고의 감정신이 부자연스러웠죠. 연기 경험도 없었고요.

앵커 : 영화도 찍고, 인기를 누리다가 활동을 줄이면서 미국을 가셨어요?
미국행의 이유는요?
용복 : 교외 스케줄로 방문했는데, 연예프로그램도 하고, 광고도 했고요.
교포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 취직을 했고요. 샐러리맨으로 살아보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죠.
앵커 : 팬들의 보고 싶다던가, 인기가 그립지 않았어요?
용복 : 미국에서도 일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공연을 하러 다녔어요.
여름옷 입고 탔다가 겨울옷 입고 내릴 때도 있었고요. 반대인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게 공연을 다닌 사람이 유일무이 하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 미국의 48주 공연을 다니셨다고요.
용복 : 그때 와이오밍, 몬테나는 교포들이 많지 않아 빼고,
나머지 주에는 공연을 하러 다녔죠.
앵커 : 교포들도 정말 반가워하셨을 것 같아요.
용복 : 네, 그래서 평일에도 공연을 할 수 있었죠. 보통 주말에 하는데,
전 평일에도 했어요. 미국생활이 정말 바쁘거든요. 그런데도 모여 주셨어요.
그런 경우가 드물었죠.
앵커 : 타국 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용복 : 다들 한국 사람이냐고 안 물어보고, 일본, 중국 사람이라고 물어보는게
마음고생이 됐어요. 88년 올림픽하고 우리나라 자동차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을 때, 그때부터 ‘한국사람’ 이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자랑스럽더라고요. 외국 나가면 정말 그런 게 눈물 나요.

앵커 : 해외에 있으면 다들 애국자 된다고 하잖아요.
자, 그럼 얼마 만에 한국에 오신 거죠?
용복 : 7년 만에 왔죠. 앵콜 때문에 다시 들어갔는데, 한국에서 스튜디오 사업을 했었어요. 가수들 레코드 취입하는 녹음실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미국에 있기 힘들어서 91년도에 들어왔죠.
앵커 : 녹음실 운영하실 때 어떤 가수들이 거쳐 가셨죠?
용복 :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부활의 ‘론리 나이트’,
박광성 ‘내일을 기다려’ 영턱스클럽 ‘ 못난이 콤플렉스’
샤크라 ‘헤이 유’, 이광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있어요.
앵커 : 90년대 인기곡들이 그 녹음실에서 탄생했네요.
용복 : 저도 행운아죠.
앵커 : 후배 가수들의 녹음 작업을직접 다 하신건가요?
용복 : 엔지니어는 초창기를 하다가 후배를 양성했어요.
저희 녹음실 출신 엔지니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앵커 : 대표적인 분들 이야기해 주시면요?
용복 : 임창덕 기사님, 이윤중 기사님, 김동훈 기사 아주 유능한 기사들입니다.

앵커 : 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 레이 찰스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시나요?
용복 : 미국의 이용복이 있어야 하는데, 욕심인가요?
앵커 : 레일찰스와의 에피소드가 있다고요?
용복 : 저의 미국 단골 전자가게 사장이 ‘레이 찰스’ 소개해 줄까?
‘ 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비서가 마이크 두 개를 사 가지고 갔다고.
그래서 전화 해보라고 했죠.
한국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다 소개를 하니깐,
언제든지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시간이 안 맞아 못 갔고요.
미국이 개방적인 나라라 뜻만 있으면 스타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앵커 : 이쯤에서 라이브 한곡 더 들어볼게요.
어떤 노래 들어볼까요?
용복 : ‘그 얼굴에 햇살을’ 노래 들려드릴게요.

앵커 : 네, 기타소리가 정말 예뻐요. 제가 옆에서 기타를 자세히 봤는데,
보통 기타 줄이 6줄인데, 선생님 줄은 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용복 :네, 12줄입니다.
앵커 : 저도 기타를 조금 배웠는데, 12현 기타는 어떤 기타인가요?
용복 : 조금 더 화려하고요. 이런 기타로 팝송을 연주한 것도 꽤 있어요.
(호텔 캘리포니아 기타 연주)
앵커 : 정말 멋있어요.
용복 : 12현 기타로 연주한 거죠.
앵커 : 12줄이라 공명도 크고 선율도 풍부하네요. 특수제작인가요?
용복 :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기타입니다.
앵커 : 3910번님이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그 얼굴의 햇살을’
노래가 너무 와 닿았어요.
5035번님 정말 좋아합니다. 얼굴 좀 뵙고 싶은데 어디가면 뵐 수 있나요?
앵커 : 양평에 집이 있다고 얘기해 주셨는데요.
녹음실 그만두시고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카페 운영 지금도 하고 있으신가요?
용복 :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앵커 : 그럼 이용복씨는 어디서 뵐 수 있나요?
용복 : 안 그래도 제가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으면 하는데
아직은 여의치 않아서요. 언젠가는 할 겁니다.
앵커 : 지난 2010년이 데뷔 40주년이었는데요.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가수생활 해 오셨는데요. 감회가 어떠세요?
용복 : 별로 할 일도 없이 지나 간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팬 분들의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해 안타깝기도 하고요.
올해에는 좋은 일도 하고,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도 하고 싶습니다.
앵커 : 가수 이용복씨의 목소리 반가워하는 분들도 너무 많고요.
지난해부터 통기타 붐이 일고 있는데요. 포크가수로써,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용복 : 그래서 신곡을 자꾸 만들어요. 70년대 포크 가수들이
신곡도 만들고 70년대와 현재 스타일을 접목시켜서 새로운 노래들을
많이 들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 앞으로 가수 이용복씨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용복 : 옛날 음악에만 심취할 것만 아니라 퓨전음악으로 발전도 시키고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의 사랑을 보답하고자 많은 가수들이
움직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 오늘 함께 한 소감은 어떠셨어요?
용복 : 재미있었고 행복했습니다.
앵커 : 네, 앞으로도 건강한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수 이용복씨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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